미국의 47대 대통령 선거는 국가 통치권자를 교체하는 법률적 행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미국인들은 두 차례에 걸쳐, 선거라는 제도적 방식을 이용해 반제도적 일탈을 택했다. 그 수단으로 정치 이방인을 택한 것이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부차적이다. 그 결과가 미국을 더 풍요롭게 만들지는 향후 볼 일이다. 분명한 것은, 그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들은 자신들의 선택으로 지금까지 수십 년의 역사와는 다른 길로 미국을 이끌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 누구도 경험하지 않은 낯선 미국은 이제 시작됐다. 트럼프 정부 1기가 실험적 혼란기였다면 4년의 숙려기를 거쳐 이제 본격적인 시동을 걸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국민들은 그것을 용인했다. 권력을 맛본 자의 권력 의지는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시퍼렇게 날 선 칼을 갈고 돌아온 그 권력 의지를 유권자들이 다시 허용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미국을 선택한 것이다. 물론 그들은 그 새로운 미국이 더 나은 길일 거라 확신할 것이다. 그만큼 미국은 지쳐 있다. 극약 처방이 유일한 소생술이 될 수도 있다. 미국은 지금 가지 않은 길 앞에 서 있다.
미국 경제 질서와 패러다임 뒤흔든 트럼프의 등장
미국 정치사의 대부분은 정당사와 함께한다.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을 제외하면 모든 대통령이 정당의 일원이었고, 미국의 주요 정책과 국민 설득 과정은 늘 정당을 통해 이뤄졌다. 그 정당들이 결성과 해체, 분리를 거듭하면서 현재의 민주-공화 양당 체제를 만들어왔다. 건국 초기, 미국 정치의 최대 이슈는 연방제의 성격과 그 권한에 집중돼 있었다. 중앙정부의 권한과 주정부와의 관계가 향후 미국의 운명을 결정할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건국 직후 연방주의와 반연방주의가 미국 정치의 핵심 쟁점이었다면, 이후 미국의 국가적 어젠다는 남부 중심의 농업 정책을 고수할 것인가, 아니면 북부 중심의 공업 정책으로 전환할 것인가로 옮겨졌다. 노예제 유지 또는 폐지 논쟁도 흔히 생각하듯 인권의 문제였다기보다 산업의 방향에 따른 이해관계의 문제였다. 이러한 차이가 결국 민주당과 공화당의 형성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은 노예제도를 통한 농업 성장을 추구했고 공화당은 노예제를 폐지해 자유 노동 시장의 확장을 꾀했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창당 이후 줄곧 같은 이념적 노선을 고수해 온 것은 아니다. 민주당의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은 대공황 이후 경제 회복을 위해 정부 개입이 필요하다 판단해 최대한 고용을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이러한 정책은 민주당이 저소득 노동자층을 우군으로 확보하는 성과로 이어졌다. 반면, 이에 반대한 기득권층은 정부 개입을 경계하고 자유방임을 선호하며 공화당을 향해 결집하게 된다.
1960년대 이후 인권 문제가 주요 정치 이슈로 부상하면서 민주당과 공화당 간의 진보-보수 대립 구도는 더욱 명확해졌다. 이로써 두 당은 180도 뒤바뀐 진영 교대를 이루었고, 민주당은 공업 지역을 기반으로 인권 존중과 정부 개입을, 공화당은 농업지역을 기반으로 자유주의와 정부 불간섭을 지향하는 구도를 형성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