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이 반환점을 맞았다. 올해 8월 '코리안 드림'을 꿈꾸는 100명의 필리핀 가사관리사가 한국에 입국하여 특화 교육 이수 후 9월부터 업무에 착수했다. 내년 2월까지 총 6개월간 서비스가 운영되니 시범사업의 절반이 지났고 계약은 3개월 남짓 남은 것이다.
서울시의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은 처음부터 월급을 둘러싼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시범사업에는 최저임금이 적용되지만, 서울시와 일부 경제 전문가는 사업 의도인 저출산 해결을 위해 최저임금을 차등적용해 이용 부담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고용노동부와 일부 시민단체에서는 외국인을 차별하면 안 된다며 차등적용에 반대하며 대립했다.
또한 필리핀 가사관리사가 무단으로 시설을 이탈해 강제 출국 당하는 사건이 국내외 언론의 큰 관심을 받았다. 지난 9월 23일 두 명의 필리핀 가사관리사가 숙박 시설을 무단으로 이탈했고 10월 초 부산에서 검거되어 강제 출국당했다. 필리핀 이주노동부(Department of Migrant Workers)는 필리핀 가사관리사에게 한국법을 준수하라고 권고했고, 현지 언론 <마닐라 타임즈>(The Manila Times)는 '가사관리사를 돌보는 일(Taking care of our caregivers)'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합법적이고 성실하게 일하는 필리핀 노동자의 보호를 촉구했다.
필리핀 가사관리사와 관련해 쏟아지는 국내외 언론 보도와 사설, 그리고 경제 정책 전문가의 주장 속 잊힌 목소리가 있다. 바로 필리핀 시민의 목소리다. 한국과 필리핀의 상황을 모두 알고 있는 한국에 거주한 지 10년이 넘은 필리핀인 4인의 생각을 들어봤다.
"외국인 근로자도 세금을 내는데 최저임금 차등적용은 불공평해"
한국에 거주한 지 14년 된 라셀(30대, 여)은 부산 소재의 공장에서 일하면서 중학생 딸 아이를 양육하는 싱글맘이다. 그는 평범한 필리핀 시민이 서울시의 가사관리사가 되는 건 '매우 비싸고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필리핀 이주노동부에서 발표한 채용 안내 자료에 따르면 한국에 입국한 100명의 필리핀 가사관리사는 국가 가사관리사 자격증(Caregiving NC)과 한국어능력시험(TOPIK) 점수를 획득한 뒤 신체 테스트와 인터뷰를 통과해야 한다. 올해 5월 초 채용 공지가 발표되고 6월 중순 넘어서 최종 결과가 발표됐으니 한 달이 넘는 채용 과정을 밟은 것이다.
"필리핀에서 한국어를 배우려면 매달 약 2만 페소(약 48만 원)가 필요한데 대부분 그만한 돈이 없어요. 취업을 위한 각종 서류를 준비하는 것도 비용이 추가로 들죠. 그래서 많은 필리핀 사람들이 중개소에서 돈을 빌려요. 저 또한 그랬고요. 빌린 돈을 한국에서 일하면서 이자와 같이 갚는 거예요. 이러한 관행은 필리핀에서 매우 흔하답니다."
돈까지 빌려가며 일하려고 왔다면, 한국에서 받는 월급(150만 원~230만 원)이 충분할지 궁금했다. 그는 "숙박 비용이 들지 않는다면 최저시급도 충분하지만, 한국에서 생활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요. 필리핀에 있는 가족에게 돈을 보내야 해서 저축하는 건 어려워요. 빌린 돈도 갚아야 하니까요"라고 말했다.
라셀은 공장에서 받는 약 180만 원의 월급으로 세금과 자녀 학원비를 낸 뒤 나머지로 빠듯한 생활을 하고 있다. 자녀에게 좋은 교육을 해주고 싶지만, 학원비가 부담스러운 건 여느 부모와 다를 바 없었고, 급등하는 물가가 부담스러운 건 여느 한국인과 같았다.
외국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그는 "(최저시급 차등 적용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해요. 한국에서 일하는 노동자로서 우리도 세금을 내고 있어요. 최저시급은 외국인을 포함한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되어야 해요"라고 목소리 높여 말했다.
국내 세법에 따르면 외국인이라도 한국에 주소가 있거나 183일 이상 머물 시 거주자에 해당하며 소득공제나 세액공제 등 일반적인 공제항목을 내국인과 똑같이 적용받고 동일하게 세금을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