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딸이 요즘 부쩍 짜증을 잘 낸다. 숙제를 하다가 '버럭'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매일밤 숙제를 완수하게끔 해야 하기 때문에, 아이가 성질을 내고 엄마인 나는 살살 달래 가면서 비위를 맞춰준다. 그런데 하루는 아이 말을 듣다보니, 내 화도 불쑥 올라왔다.
"내가 너를 어디까지 맞춰줘야 하는 거야?"하며 나 또한 화를 내버렸다. 나는 거기에다 덧붙였다. "네가 아무리 짜증 내봐, 나 못 이겨. 나 갱년기야!" 라고. 어른인 내가 참았어야 했는데... 그렇게 한바탕 전쟁이 순식간에 벌어졌다가 끝이 났다.
며칠 전 아이가 집에서 집중을 잘 못하는 것 같아 집 근처 도서관에서 하면 공부가 더 잘 될까 싶어 갔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새는 법. 한 시간을 넘기니 아이가 집에 가고 싶다며 몸을 꼰다. "엄마, 나 이제 집중력 떨어졌어. 나 가고 싶어"라고 내 귀에 대고 소곤소곤 말한다
나는 집중해서 글을 쓰고 있던 중이라 "잠깐만!"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아이는 입을 삐죽거리면서 핸드폰을 만진다. 그렇게 1~2분쯤 지났을까, 아이는 또 나를 부르면서 폰 화면을 보여준다. 핸드폰 화면 안에는 갱년기 증상들이 이모티콘으로 그려져 있었다. 그중 아이가 확대해 보여준 부분이 '감정기복'이었다.
뜸 들이다 아이가 꺼낸 단어
딸이 보여준 그 그림을 보는 순간 웃음이 팍 터졌다. 나는 "잘 아네. 엄마 지금 감정기복 있으니깐 알아서 잘 좀 해줘"라고 했다. 몸을 뒤틀고 있는 딸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을 듯해서, 글 쓰던 것을 정리하고 일어났다.
집에 가는 길에 딸에게 물었다. 내 물음에 딸은 처음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딸, 요즘 왜 자꾸 짜증이야? 왜 자꾸 요새 엄마한테 짜증을 내는 건데? 그냥 가만히 있어도 화가 막 나고 그러는 거야?"
그러자 머뭇거리며 돌아오는 딸의 답변.
"엄마... 나, 사춘기인가 봐."
뜸을 들인 뒤 말한 단어가 '사춘기'라니. 내심 나는 너무 웃겼지만 신중하게 말하는 아이의 태도에 웃음을 참았다. 잡고 있는 딸 손을 세게 쥐고는 "아 딸한테 사춘기가 왔구나~ 우리 딸, 이제 진정한 어른이 되고 있는 거네!" 했다.
아직도 이렇게 아기 같은 손, 보드라운 머리카락, 부러질듯한 팔뚝인데. 몸과 다르게 마음은 벌써 어른을 향해 가는 것이다. 딸이 덧붙이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