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추위가 계속되었던 지난주, 미처 녹지 못한 눈이 얼어붙어 빙판이 된 길을 걸어 지하철역으로 가고 있었다. 바쁜 출근 시간이라 1분 1초가 아쉬웠지만, 서두르다가는 미끄러운 보도블록 위에서 넘어질 것 같아 마음에 반비례 하는 속도로 더딘 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그때 맞은편에서 가벼운 운동복에 패딩점퍼를 걸친 여성이 뛰어오는 게 보였다. 그렇다. 그녀는 걸어오는 게 아니라 뛰. 어. 오. 고 있었다. 나를 지나쳐 하천변 공원으로 향하는 여자를 부러움의 시선으로 좇았다. 얼음으로 뒤덮인 미끄러운 노면 위를 사뿐사뿐 가볍게 달려가는 그녀를 보며 과거의 나를 떠올렸다.
출근길 지하철을 놓치지 않으려고 힐을 신은 채로 한 번에 두세 칸씩 계단을 뛰어내려 가도 넘어질 걱정 같은 건 하지 않았던 시절.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언제 이렇게 세월이 흐른 걸까. 잘 살다가도 가끔씩 인생의 황혼기를 향해 가는 나이임을 느낄 때면 마음에 스산한 바람이 인다.
그날 아침의 일 때문인지, 아니면 추위 때문인지 마음이 다소 움츠러들어 있었는데 마침 이 책을 만났다. 김신지 작가의 <제철 행복>. 싱그러운 녹음이 넘실대는 여름숲이 어서 페이지를 넘겨보라는 듯 내게 손짓했다.
4개의 계절마다 6개의 절기
이 책은 한 해를 사계절이 아닌 스물네 개의 계절로 나누어 각각의 절기에 놓치지 말아야 할 즐거움을 알려준다. 그렇다면 겨울과 봄이 섞여 있는 요즘엔 어떤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눈이 녹아 비가 되어 내리는 이맘때는 절기상 '우수(雨水)'에 해당한다. 얼었던 땅이 녹으며 서서히 온기가 돌기 시작하고 흙속에 잠들어 있던 새싹들이 빗물을 받아마시며 으쌰으쌰 힘을 내 세상으로 나오는 계절.
겨울을 견디고 푸릇푸릇 솟아난 봄나물은 진한 향과 맛으로 우리를 유혹한다. 밥에 쓱쓱 비벼 먹는 쌉싸름한 달래장과 제철 쑥을 넣은 도다리 쑥국 그리고 향긋하고 고소한 냉이 튀김 등이 이 계절에 가장 맛있게 즐길 수 있는 행복이다.
우수가 지나면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경칩(驚蟄)'이 다가오고,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는 '춘분(春分)'이 그 뒤를 잇는다. 그리고 비로소 온 산천에 색색깔의 꽃이 만발한 봄의 절정 '청명(淸明)'이 시작된다. 마지막으로 봄비가 내려 곡식을 기름지게 하는 '곡우(穀雨)'가 지나면 봄은 작별을 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