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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보수란?
2025-02-19 13:58:34
정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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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수의 일반적 의미

본래 보수란 전통적 가치를 수호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한 나라의 전통적 문화, 민족주의, 사회의 기본 질서와 가치를 지키려는 사고방식이나 태도를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민족적 자긍심과 국가의 전통성과 정체성을 강조한다. 민족주의에 바탕을 둔 국가의 정통성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만일 국가가 분단된 상황이라면 조국의 단일성과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당연히 통일을 지향하려고 한다. 또한 보수는 사회의 도덕적 가치와 법질서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솔선수범하고자 한다.

더욱이 국가와 사회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헌신과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다. "귀족은 의무를 갖는다"는 의미의 이른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가 보수의 덕목 중 하나인 이유가 그 때문이다. 이는 사회 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를 의미하는 것으로 부와 권력, 명성은 사회에 대한 책임과 함께 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고대 로마 시대부터 유래된 가치로, 전쟁이 났을 때 왕족이나 귀족이 먼저 전장에 나갔던 데서 시작되었는데, 부와 권력, 명성을 누리려면 그에 맞는 의무를 다하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 박사를 그 예로 들곤 한다. 어디 그 분뿐이랴. 일제 강점기에 기꺼이 자신과 가족을 희생한 수많은 독립운동가, 그 이후 조국의 독립과 발전을 위해 헌신한 수많은 순국선열들, 그밖에 이루 말할 수 없는 훌륭한 영웅들을 우리는 알고 있고, 그분들께 한없는 부채의식을 느끼고 있다.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보수의 가치를 실천한 분들이다.

2. 보수와 헌법적 가치

이처럼 보수가 지키고자 하는 가치는 사실 한 국가의 기본적 가치이고, 따라서 이는 헌법적 가치를 지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사실 헌법이란 한 국가의 기본적 가치질서로서 국가가 목표하고 지향하는, 그리고 국민이 합의하고 약속한 핵심적 가치를 공적으로 문서화한 것이기 때문에 진정한 보수라면 당연히 헌법적 가치를 지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런데 헌법적 가치 내지 헌법정신이란 것이 무엇인가? 바로 민주주의, 법치주의, 사회국가 원리의 바탕 위에서 자유, 평등,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국민의 기본권을 실현하는 것이다. 즉 우리 헌법 10조에도 규정하고 있듯이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실현하는 것이다. 아울러 앞서 언급한 보수의 가치인 민족의 역사와 전통 및 정체성을 헌법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예컨대 우리 헌법 전문에서 대한민국의 뿌리와 전통, 역사와 정체성을 강조하고, 제9조에서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해야 할 국가의 의무를 강조한 것이 이에 해당된다. 또한 헌법 전문과 제4조에서 평화적 통일을 지향하고 이를 위한 국가의 의무를 천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바로 이러한 가치들을 실현하는 것이 보수의 목표이자 지향점이다.

3. 보수와 진보

그런데 모든 이념이 한 국가의 기본 가치 내지 헌법적 가치를 실현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진보도 마찬가지이고 또한 당연히 그래야 한다. 다시 말해 보수·진보, 좌우의 차이를 떠나 모든 이념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구현해야 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헌법상의 기본 가치인 자유·평등·정의의 실현을 궁극적 목표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념은 그 자체 완결된 절대선이거나 궁극의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다. 이처럼 헌법정신의 구현이라는 궁극적 목표와 관련해서 좌우의 차이는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

그런 점에서 나는 보수·진보, 좌파·우파라는 이념의 절대적·배타적·이분법적 대립구도를 거부한다. 이런 작위적·정치공학적 구도는 사회를 분열시키고 퇴행시킨다. 헌법의 기능 중 하나가 사회통합이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이처럼 사회의 갈등과 상호 배제를 조장하는 극단적 대립구도는 헌법정신을 파괴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양자 모두 헌법정신을 실현하고, 개인의 자유를 추구하면서도 공공선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이념적 차이가 있을 수 없다. 또한 양자의 구별 자체가 모호하고 중첩적이며, 오늘의 진보적인 가치는 내일이면 보수적인 것이 되고, 아울러 한 개인도 진보적인 것과 보수적인 것을 같이 지니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굳이 양자의 차이가 있다면 보수와 진보는 이러한 헌법적 가치를 실현하는 방법과 대상에 있어서, 그리고 그 절차 및 시기에 있어서 점진적 추진을 하느냐 혁신적 추진을 하느냐, 또한 자유와 공공선 양자의 조화와 결합 비율의 상대적 차이에 불과하다고 하겠다.

4. 한국에서의 보수

이런 점에서 볼 때 현재 우리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보수는 보수가 아니다. 오히려 보수적 가치를 배척하는 반보수다. 자칭 보수세력의 과거 일제강점기 시 일제에의 충성과 부역행위, 해방 후 일제청산의 거부 및 일제 강점 행위의 정당화, 민족의 역사와 전통 및 정체성을 경시하고 비하하는 식민지 근성, 지나친 외세의존 내지 사대주의, 독립운동가의 업적을 폄하하고 부정하는 행태를 봐라. 육사 교정에 있는 홍범도 장군의 흉상 이전 시도를 봐라. 또한 이른바 자칭 보수집회에서 등장하는 성조기, 이스라엘기, 심지어 브라질기를 봐라.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제대로 된 보수라면 자민족을 사랑하고 민족적 자긍심으로 가득차야 할 텐데, 자국민을 갈라치기 하면서 아무 관련 없는 타민족은 이다지도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것이 주권을 가진 독립국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또한 강자에게는 충견처럼 한없이 비굴하고 약자에게 군림하는 행태, 비겁한 기회주의적 경향, 경제적·사회적 불평등 조장, 부와 권력에 대한 한없는 동경과 추구, 타인과 사회에 대한 배려와 공감의 결여, 왜곡된 반공 이념과 결탁하고 분단의 고착화와 적대적 공생관계를 지향하는 반통일적 태도, 자신과 생각이 다르거나 자신의 이익에 배치되는 모든 세력을 종북좌파 내지 빨갱이로 규정하고 배척하는 태도, 목적과 가치와 의미를 추구하는 삶이 아닌 반지성·반철학적인 천박한 삶, 신의 계시와 가르침이 아닌 생활의 편의와 사교 및 부와 권력을 추구하기 위한 수단으로 신앙을 악용하는 상당수 종교인들의 행태, 미래세대와 모든 동식물을 포함한 자연환경의 보존을 위한 노력을 거부하거나 경시하는 태도 등이 오늘날 우리 사회 보수의 모습이다. 모두가 헌법정신에 배치되는 현상들이다.

5. 보수와 반공이념

아울러 보수의 덕목인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우리 사회의 자칭 보수라고 자부하는 지도층과 기득권층의 헌신과 희생은 바라지도 않는다. 그들의 군복무 이행률도 떨어짐은 물론, 심지어 군복무 회피 목적으로 미국 국적 취득을 위해 자식이나 손주들의 미국 원정 출산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반공과 안보를 입에 달고 산다. 한마디로 국가와 사회에 대한 자신들의 의무는 소홀히 하면서 특권과 혜택을 갈구한다. 오래전부터 나라를 지키고 의무를 이행하며 국가·사회에 헌신하고 희생하는 일은 힘없는 일반 민중의 몫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이런 모순과 불의가 어디 있나?

사실 우리 사회의 보수는 반공을 운운할 자격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반공과 안보를 부르짖고, 북한을 악마화해서 결과적으로 자신들의 기득권과 권력을 연장·확대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어 왔다. 우리 사회에서의 반공 이념은 사유재산제도와 시민의 자유를 부정하는 전체주의적 공산주의를 배격하고 헌법과 자유민주주의를 지키자는 이념이라기 보다는, 과거 청산을 부정하는 세력과 그에 편승해 온 불의한 세력들이 일제의 침략과 강점을 정당화하고 치부를 숨기며, 부당한 기득권과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어 왔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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