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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글만 쓰면 방송국서 연락, 부여 셀럽이 됐습니다
2025-02-22 20:08:54
오창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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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인생은 60부터라고 했나. 기억도 없는 오래전 과거의 어느 때, 별 감흥 없이 들었던 60이라는 나이는 아주 먼 미래였다. 결코 닥쳐오지 않을 것 같았던 미래였는데, 그걸 어느새 목전에 두고 있는 나이가 되었다.

어쩌다 글 쓰는 이로 살기로 마음먹고 글쓰기 언저리만 맴돌다가 착한 남자를 만나서 결혼하게 되었다. 그와 손잡고 시골로 이주해서 살게 되었다. 도시 출신의 도시적 사고방식으로 시골 원주민들 틈바구니에서 두 아이를 육아하며 사는 생활은, 당시 나에겐 낯설고도 두려웠다.

결혼과 육아에서 도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두운 밤 현관문을 열고 도망치려는 나를 책임감과 모성이 붙잡았다. 인터넷이 막 활성화 되었던 시절이었다.

다행히 인터넷망은 도심과 시골을 차별하지 않았다. 나는 현관문을 여는 대신 매일 밤 인터넷 속으로 도망쳤고, 어느 날 거기서 <오마이뉴스>를 만났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영원히 꺼내놓지 못하고 글자 감옥에 갇혀 있을 내 이야기를 <오마이뉴스>가 들어주었다. 두려움을 글쓰기로 치유하고 은둔형을 세상으로 안내하고 용기를 내게 해준 매체가 <오마이뉴스>였다.

시골살이의 유일한 즐거움, 기사쓰기


나는 주로 내가 경험했던 일과 마을의 재미있는 에피소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 등을 써서 <오마이뉴스>에 올렸다. 글이 채택될 때 느끼는 희열이 시골살이의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내가 기사를 <오마이뉴스>에 써서 올리면 방송국에서 출연 요청이 올 때가 많았다. 주로 기사 내용에 등장한 인물에게 출연 섭외가 오곤 했다. 그들을 방송에 출연시키고 준비과정에 동참하면서 나 또한 점점 시골살이에 동화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나의 글쓰기에 적극적으로 활용되었고 그들도 기꺼이 내 기사에 등장인물이 되기를 거부하지 않았다(관련 기사: 여기로 오세요... '반딧불이' 별천지가 펼쳐집니다 https://omn.kr/28uvd ).


지난밤 마을 누구네 집에서 누구 제사를 지냈을 거라는 사소한 일이 그날의 화젯거리 전부였던 시골이었다. 마을 사람이 TV 화면에 스쳐 지나가는 것도 화제였을 당시에 주인공으로 나와서 숨겨뒀던 끼를 발산하는 장면이 대문짝만 하게 나왔다.

그는 오일 장날 장에 갔다가 이웃 마을 사람을 비롯한 여러 사람의 관심을 끄는 연예인급 대우를 받고는 자존감이 하늘까지 치솟아서 돌아왔다.

그런 식으로 부여의 공무원과 교사, 농민들, 내 이웃을 방송에 출연시키거나 표창받게 해주는 보람이 동력이 됐다. 바쁜 와중에도 내가 글 쓰는 일을 멈추지 않게 했고 완벽한 시골 사람으로 정착해 살게 했다. 비전 없는 시골살이에 겁 없이 뛰어든 우리를 비웃던 마을 주민들의 눈길도 달라졌다. 나를 '작가', '기자'로 인정하고 그렇게 불러 주었다.

그러나 초창기에 <오마이뉴스>에 연재 기사를 쓰거나 사는 이야기 코너를 맛깔나게 썼던 사람들이 책을 출간하며 공인된 작가로 발돋움하는 동안 나는 항상 제 자리인 것만 같았다. 아이들은 여전히 내 손이 많이 가는 나이였고 생존을 위해 사업도 해야 했기 때문에 글 쓰는 일에만 집중하기 어려웠다. 한 마디로 글의 맛을 살리는 실력이 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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