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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고 일어날 것 같은, 기묘한 세계
2025-02-22 20:16:49
김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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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종종 이런 경험을 한다. 젊은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줄임말이나 신생어가 등장해 당황하는 일. 무인주문기 앞에서 헤매다 얼굴이 달아오르는 일. 그러면 나만 세상 돌아가는 속도를 맞추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 세계가 낯설어진다.

최근 읽은 짧은 소설 속 주인공의 상황이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아내와 사별한 뒤 한동안 밤잠을 설쳤던 남성이 어느 날 아침 양말의 솔기를 발견하는 이야기다. 발가락에서부터 발목 밴드까지 양말 전체를 가로지르는 솔기. 깜짝 놀라 서랍을 열어보니 모든 양말에서 솔기가 보인다. 예전에는 까맣게 몰랐던 솔기가 눈에 들어오자 그는 당황스러움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

그렇다고 믿었던 것들이 이전과 다르다는 걸 알아채는 일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파란색이나 검은색일 줄 알았던 볼펜이 죄다 보기 싫은 갈색으로만 나오고, 편지 봉투에 붙은 우표가 네모가 아니라 동그라미다. 그가 모르는 사이 오래전부터 그래왔다는 듯. 놀란 그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소설 속 남성이 맞닥뜨리는 상황이 머지않은 미래의 내 모습 같았다. 세상은 너무도 빠른 속도로 변하고 그걸 따라잡지 못한다고 느낄 때가 있다. 어떤 것들은 익숙한 채로 곁에 오래 머물러주었으면 싶은데 몇 년 사이 사라져 버린다. 그런 순간이면 편리함과 속도만을 좇는 세상의 변화가 때로는 누군가를 너무 쉽게 배제하는 건 아닐까 의문이 든다.

이 이야기는 올가 토카르추크의 <기묘한 이야기들>이라는 단편집에 실린 소설 중 하나다. 남성이 불현듯 마주한 세계는 현실에 없는 공간이지만 아예 없을 것 같지 않다. '문학은 일어난 일과 일어날 수 있는 일 사이의 공간'이라는 올가 토카르추크의 말처럼, 아직 경험하지 못한 세계이지만 언제든 발을 딛게 될 공간들이 책에 담겼다.

현대적 환상, 올가 토카르추크


올가 토카르추크는 폴란드 태생의 소설가로 <태고의 시간들>(1996)로 코시치엘스키 문학상을, <방랑자들>(2007)로 폴란드 최고 권위의 상인 니케 상을 받았다. 이 작품으로 2018년 부커상 인터내셔널을 수상하며 세계 문학계에 반향을 일으켰고 같은 해에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그는 문학의 주류적 관점에서 벗어나 탈중심주의적 세계관을 그리며 "기발하면서도 괴팍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기벽(奇僻)'"(옮긴이 최성은의 말)을 발휘하여 새로운 형식과 실험을 시도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기묘한 이야기들>에 실린 또 다른 소설 <녹색 아이들>에는 숲에서 무리 지어 생활하며 광합성으로 에너지를 얻는 아이들이 등장한다. 이 아이들의 머리카락에서는 이끼 냄새가 나고 피부에는 작고 짙은 녹색 점이 가득하다. 식물처럼 피부를 통해 햇빛을 흡수하는 아이들은 스스로를 열매라고 인식한다. 무리 중 누군가 숨을 거두면, 그의 시체를 나무에 묶어 동물이 먹어 치우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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