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이나 말에서 떨어지고, 계단에서 구르고, 격투를 벌이고, 불이 붙고, 교통사고를 당하고…. 영화·드라마 속, 실제라면 목숨을 잃는 아찔한 장면에서 한 번쯤은 생각해 봤을 것이다. '저 사람 누굴까, 괜찮을까?' 하고.
이들은 '무술연기자'로, 배우가 직접 하지 못하는 위험한 행위를 대신 연기해 스크린의 공백을 메운다. 스턴트맨이란 오랜 명칭이 있지만, 스턴트는 무술연기의 한 종류만 의미할뿐더러 여성 무술연기자를 포괄하지도 못해 적절한 명칭이 아니다. 단편적으로만 봐도 위험천만한 무술연기자의 삶은 어떤 노동으로 채워져 있을까? 3월 <일터>에서는 27년 차 무술연기자인 김태득 무술연기자지부장(한국방송연기자노조)을 만나 이들의 노동 이야기를 들었다.
"이리 대단한 노동인데… 4대 보험이 안 된다고?"
"27년 차지만, 저는 노조 일을 하느라 현장 일을 안 한 진 꽤 됐어요. 일을 시작한 99년과 지금은 노동환경이 많이 변했죠. 처음 일을 시작하고 놀랐던 기억이 나요. '이런 대단한 일을 하는데 4대 보험이 안 된다고?' 그런데 지금도 마찬가지죠. '이렇게 대단한 노동을 하는데, 노동법 보호를 못 받는다고?'"
2000년대의 무술연기자는 '무법 사각지대'에 있었다. 무술연기자를 포함한 예술인에게 산재보험 가입 자격이 주어진 때는 2012년이 지나서다. 이전엔 국가의 보호망이 전무했다. 2005년 무술연기자지부가 만들어지고 비로소 무술연기자의 권리 찾기도 시작됐다. 2018년 한국방송연기자노조가 대법원에서 노동조합법상 노동자 지위를 인정받고 단체협약을 성사시키면서 처우가 눈에 띄게 개선됐다.
"영화, 드라마에 말 타는 장면이 많죠? 말이 위험해요. 가령, 풀이 무성한 개활지를 단체로 말을 타고 달려요. 근데 땅이 평평하지 않거든요. 같이 전속력으로 달려요. 그러다 움푹 팬 곳에 말 발이 빠져요. 위에 탔던 사람은 넘어져요. 말은 보통 때면 사람 안 밟는데, 전속력으로 달리니까 사람이 밟히는 거죠. 또, 사극에서 여럿이 말을 타고 도망치는 장면을 찍을 땐데, 구불구불한 소나무 길을 달리는데 거기 나뭇가지가 위험하게 나 있는 걸 모른 채 찍다가 뒤에 따라오는 애들이 다 나무가시에 찔리고 긁혀서 팔, 볼이 다 심하게 찢어진 거예요. 말이 다 잘 훈련된 게 아니라 여러 승마장에서 급조돼 오기도 하고요. 스트레스가 쌓인 말은 재갈도 물고, 발로 차고, 뛰면 안 멈추기도 해요. 손이 얼얼할 정도로 고삐를 잡고 있어요. 이때 미숙하면 낙마하는 거죠."
당시는 촬영 현장의 장시간 노동과 산업재해가 지금보다 심각했다. 낮밤이 바뀐 채 하루 두세 시간만 자고 내리 며칠을 일하는 건 당연지사였다. 밤 장면을 위해 밤을 새우고, 낮 장면을 또 찍으니 아침에만 눈을 붙이고 점심 전에 일어났다. 그런데 액션 장면만 또 몰아서 찍으니 촬영 기간 내내 이렇게 지내야 했다. 게다가 이동 차량도 지원되지 않아, 문경, 제천, 안동, 용인 등 제작사가 부르면 알아서 찾아가야 했다.
"사극은 유독 겨울에 물에 빠지는 장면이 많아요. 대개 회상 장면이죠. 시청자들이 보는 건 한 번이지만, 무술연기자는 한 장면을 위해 숱하게 빠져요. 10번 넘게, 밤새워 찍고요. 물이 진짜 얼음장 같죠. 모닥불 피우고 따뜻한 물도 주는데, 바쁘니까 이게 원활하지 않을 때가 있어요. 지금 생각하면 횃불도 참 위험해요. 화상도 그렇지만, 그때 횃불 장면 찍고 난 무술연기자들, 끝나고 나면 얼굴이 시커멓게 됐거든요? 속도 아프고. 아마 예산 때문에 등유 같은 제일 싼 기름을 썼을 텐데, 그런 게 다 몸에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요? 50~60대가 된 무술연기자들 보면 후유증으로 몸이 아픈 사람이 많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