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76년생, 80년생 중년 부부다. 20대에 결혼하여 세 아이를 낳고 기르며 30대를 지나왔다. 남편은 직장에서 나는 가정에서,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짐 없이 서로가 감당했을 나름의 수고를 인정해주며, 적절한 가사 분담으로 비교적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다.
지금 돌아보면, 세 아이가 어린 시절에 남편은 슈퍼맨이었던 것 같다. 아침에 출근했다가 저녁에 퇴근하고 와서, 아이들을 씻기는 것부터 청소, 설거지는 물론 아이들과 놀아주고, 숙제 봐주는 것과 책을 읽어주며 잠을 재우는 것까지 많은 것을 함께 해 주었다.
낮 동안 세 아이를 케어하느라 고군분투했을 아내를 위해 가진 재능과 체력을 아낌없이 소진해주는 고마운 남편이었다. 누군가는 그를 가리켜 '애처가'라고 불렀고, '자상한'이라는 형용사를 아낌없이 붙여주었다.
그가 늦게 퇴근하던 어느 날, 나 홀로 방으로 들어가 세 아이를 재우다 함께 잠이 든 적이 있었다. 너무 피곤한 나머지 그날의 집안일을 다 마무리하지 못하고 잠들어 버린 것이었다. 새벽에 불편한 마음으로 거실로 나왔다가 나는 감동으로 눈시울을 붉혀야 했다.
아무렇게나 걷어 놓았던 빨랫감이 가지런히 개어진 채 한 곳에 놓여 있었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장난감들은 모두 제자리에 정리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소리 없이 해치워 준 남편은 거실에서 곤하게 잠들어 있었다. 피곤을 무릅쓰고 아내를 위해 수고한 이에게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나는 그가 단지 의무감으로 그 일을 했다고 느끼지 않았다.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이 참 다양하겠지만,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은 '아, 이 사람이 나를 참 아껴주는구나. 나를 사랑해주는구나. 나의 고됨을 이해하고 기꺼이 도움을 주는구나'라는 거였다.
남편이 달라졌다
그랬던 남편이 40대 후반에 들어서면서부터 바뀌기 시작했다. 세 아이(올해 스무 살(대1), 둘째가 18세(고2), 막내가 14세(중1)이다)가 많이 자라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고, 돌봄의 강도가 낮아질수록 남편의 가사 참여 시간이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