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신종 질환이 유행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내란성 불면증"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더군요. 안 그래도 한국인 세 명 중 한 명이 불면증을 앓고 있는 마당인데 변종까지 나타나 과로에 시달리는 시민들을 더욱 괴롭히는 모양입니다.
비록 미국에 살고 있지만, 제 처지도 다르지 않습니다. 작년 12월 초, 모국의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느닷없는 계엄을 선포해 밤잠을 빼앗긴 이래 고질적 불면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탄핵이 가결된 뒤에는 법 집행을 완력으로 버티면서 고혈압까지 추가로 안기더군요.
이후 밤에 수시로 깨어 전화기를 켜서 "이제 체포됐나"를 확인하는 게 버릇이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한국 시민 다수가 겪고 있는 신종 불면증의 흔한 증상이라더군요. 마침내 윤 대통령이 구속 수감돼 이제 다리 뻗고 잘 수 있게 되나 싶었지만, 여전히 오밤중에 깨어 "이제 탄핵됐나" 확인하게 되더군요.
게다가 검찰의 늑장 기소가 법원의 구속취소 가능성을 열어 주었고, 검찰은 기다렸다는 듯 항고를 포기했습니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이 검찰을 향해 '즉시항고를 제기해 상급심의 판단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는데도 말입니다. 불면증과 고혈압도 부족해, 이제 화병까지 안기려는 것일까요?
하지만 수사 결과 밝혀진 기막힌 사실들은 불면이나 화병 정도가 아니라, 저를 깊은 공포로 몰아 넣었습니다. 대통령 일행이 계엄을 합리화할 목적으로 북한을 지속적으로 도발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회를 죽음과 파괴의 아비규환으로 만들 수 있는 끔찍한 시나리오를 전개한 것인데, 이런 사태의 주역이 풀려난 것입니다.
불안해하지 마세요
한국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한국 검찰이 얼마나 집요한 조직인지 알고 있습니다. 보복 기소와 아집에 가까운 항소는 한국 검찰의 정체성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랩니다. 심지어 수사 과정의 심각한 문제가 드러나 재심으로 풀려난 피해자들에게조차 잔인하리만큼 항소와 항고를 이어온 게 한국 검찰 아니던가요?
최근 무기수 김신혜씨가 재심을 통해 무죄를 받고 풀려났습니다. 그는 교도소에서 아버지를 살해하지 않았다고 지속적으로 결백을 호소해 왔습니다. 그리고 수감된 지 15년 만에 영장 없는 압수수색, 수사 과정의 가혹행위, 그리고 수사 기록 조작 등의 문제가 드러나 재심이 결정되었고, 결국 24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고 세상으로 나왔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이에 불복해 항소했습니다. 현재 김신혜씨는 심각한 망상 증세를 보이고 있는데, 앞으로 2심은 물론 항고심까지도 재판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게 우리나라의 검찰입니다.
하지만 검찰의 조직 내 우군들, 특히 검찰 고위직들에 대해서는 전혀 이야기가 다르지요. 검찰의 이런 이중적 태도는 김학의 특수강간 사건 무혐의, '스폰서 검사' 무혐의,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 검사 접대 '술값 쪼개기' 등으로 반복돼 왔습니다. 이런 이유로 검찰이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에 대한 수사와 기소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로부터 넘겨받을 때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우려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많은 분들이 탄핵 심판 결과를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러다가 탄핵이 기각되는 게 아니냐고 말이지요. 이해합니다. 대통령이 위헌적 계엄을 선포했기에 파면하는 게 상식이지만, 계엄 이후 워낙 몰상식한 일들이 자주 일어나다 보니 불길한 마음이 드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래도 안심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탄핵 기각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요. 헌재는 대통령 파면이 사회에 미칠 파장을 고려해, 다수가 납득할 만큼 정교하고 세심한 판결문을 작성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안심하시고, 탄핵 인용 뒤를 준비하자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결과에만 매몰되면 그다음에 해야 할, 정작 중요한 일을 놓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헌법재판소가 내란 혐의 대통령을 용산으로 돌려보낼 것으로 판단한다면, 1987년 성취해 40년 가까이 키워 온 한국 민주주의의 수준을 폄하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물론, 저 역시 한국에 있었다면 시위 현장에 서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과에 조바심을 갖기보다, 우리가 또다시 지켜낸 민주주의를 기념하기 위한 축제의 장으로 즐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