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에 봄이 가득하다. 퇴비를 뿌리고, 두둑과 고랑, 이랑을 만든다. 유독 늦게 찾아온 봄, 겨우내 얼었던 땅이 녹으며 쑥과 냉이가 올라온다. 겨울 휴가를 잘 보낸 덕에 밭 만드는 일이 기운이 난다. 파종한 어린 싹이 땅을 뚫고 올라오는 모습을 보면 신비롭다. 소박하고 단순한 농부의 생활이지만 또 빛나는 순간 순간이 이어진다. 해 뜨면 일하고 달 뜨면 자는 생활을 20년 넘게 해왔다. 힘들지만 유기농 농부로 사는 일은 보람있다. 흙 만지며 사는 농부의 사는 이야기를 연재 기사로 정리하고자 한다.
단순, 소박, 생태적으로 살고자 귀농
우리 부부는 내가 33살 때 귀농해서 21년째 유기농 농사를 짓는 전업 농부다. 쌈채소, 고추, 토마토, 가지, 배추, 감자, 브로콜리, 양배추, 마늘, 양파 등 50여 가지 채소를 2천평 정도 밭에서 농사짓는다. 조화와 순환을 기본으로 하는 한국 전통 유기농법을 따른다. 해마다 같은 땅에 다른 작물을 섞어서 심는다. 귀농 초기에 풋풋하게 농사 짓고 직거래하는 이야기를 한 번 <오마이뉴스>에 기사로 올린 적이 있다( '친환경'으로 FTA 넘어라? 한 달만 농사 지어봐 ). 지금 보니 당시 사진이 참 젊어 보인다.
귀농 전에 서울에서 언론홍보 일을 했다. 일은 재미있었으나 매일 야근을 해야 했고, 50살 넘은 사람이 회사에 없었다. 중년으로 접어드는 상사들의 모습은 좋은 귀감이 되지 못했다. 나이 서른에 무작정 회사를 그만두고 아내와 함께 인도와 네팔로 두 달간 배낭 여행을 다녀왔다. 첫 해외여행에서 버스 사고도 당하고, 작은 수술까지 하는 등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뭔가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서 살아도 된다는 걸 배웠다.
여행 후 새로운 삶을 모색하다, 우연히 아내가 먼저 읽은 <월든>이란 책이 영감을 줬다. 돈이 중심이 되는 사회를 거부하고 숲속에서 자급자족하며 사는 이야기였다. 우리도 한번 이렇게 살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태적인 삶, 유기농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 농사철에는 농사 일을 하고 겨울엔 여행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귀농학교를 다녔다.
우여곡절끝에 장수군으로 귀농해서 유기농사를 시작했다. 귀농 정착 과정은 참 고단했다. 문화 차이, 텃새, 농사 배우는 어려움을 차례 차례 겪었다. 철물점에 가면 외지인이라고 아침과 오후에 같은 물건 가격을 다르게 불렀다. 마치 다른 나라로 이주해온 것 같은 시간을 보냈다. 열심히 농사 짓고, 주변 이웃들과 함께 생활하고, 농민회 활동을 하면서 정착을 했다.
선배들에게 전통적인 유기농사법을 배웠다. 다양한 작물을 키우며 돌려짓기 해온 선조들의 농법을 밭에 적용했다. 친환경 농사법을 배우고 싶다니까 아낌 없이 자신이 수십년 쌓아온 노하우를 모두 전수해주신 토마토 농부도 있었다. 작물에 문제가 있다고 전화하면 새벽에라도 찾아오셔서 해결책을 알려주시곤 했다. 아직도 이분하고는 허물없이 지낸다. 토마토 농사법 하나를 제대로 배우니 다른 작물 농사법도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됐다.
마치 고향처럼 애틋한 정을 느끼게 된 장수군에서 13년을 잘 적응하고 살았으나 더이상 유기농사를 지을 수 없는 사정이 생겨서 떠나야 했다. 그동안 우리 때문에 논에 농약을 안 뿌리던 이웃이 다음 해부터 헬리콥터로 농약 방제를 하시겠다고 했다. 드론이나 헬리콥터 방제를 하면 주변에서 유기농사를 지을 수 없다. 유기농사를 지으려면 좋은 이웃을 만나야 했다(유기농 위해 이사하고 이웃에 읍소, 힘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