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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모퉁이에서 찾아낸, 공개하기 싫은 비밀 맛집
2025-05-02 07:25:26
여운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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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부산 출장을 다녀왔다. 부산은 내가 나서 자란 고향이고, 내 모든 정서의 기반이 되는 곳이지만 가족들이 모두 수도권으로 이주한 지금은 내게도 관광지 비슷한 도시가 됐다. 항상 가슴 속에는 광안리 앞바다의 파도가 넘실거리고 혈관 속에 돼지국밥 육수가 피와 섞여 흐른다고 자부하는 나지만, 정작 부산을 방문할 기회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그래서 이번 출장은 비록 당일치기였지만 참으로 소중했다. 일하러 간 것이었으므로 놀러 다닐 기회는 없었지만, 바닷바람 섞인 고향의 공기를 마시고 간단히 점심 한 그릇 먹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촉촉해지는 느낌이었다. 이거지 이거야. 부산역에 발을 딛는 순간 편안함이 온몸을 감싸는 이 느낌.


남천동의 숨은 명소 '시골 통돼지 볶음'

부산에 도착한 건 점심때가 약간 지나서였다. 출장지로 다시 이동해야 하는데 역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갈까 하다가 그냥 버스를 탔다. 마침 출장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나의 오랜 단골 밥집이 있기 때문이었다. 금련산역에서 광안리 해변으로 내려가는 좁은 골목길 어귀에서 '시골 통돼지 볶음'이라는 정겨운 간판이 나를 반겼다. 몇 해 전 부산 지사에서 근무할 때 자주 찾아가던 곳이다.

여기는 행정구역상으로 남천동이다. 유명한 영화 대사 "너그 서장 남천동 살제?" 할 때 그 남천동. 한때 부산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 단지가 있어서 그런 대사가 나온 거다. 지금도 살기 좋은 곳임은 분명하지만 이제는 화려하기보다는 좀 더 단아하고 정갈한 느낌을 주는 동네다.

가게에 들어서자 사장님이 깜짝 놀라며 반겨주신다. 연락도 없이 웬일이냐며. 마침 사장님 가족분들이 다 모여 식사하느라 고기를 굽고 계신다. 나도 염치 불구하고 곁에 앉아 한 젓가락 거들었다. 이 집의 주력 메뉴는 통돼지 볶음(짜글이)과 통돼지 찌개(김치찌개)인데 메뉴판에 세 번째로 올라 있지만 어찌 보면 메인이라 할 수 있는 생삼겹살의 질이 상당한 곳이다. 가족의 단란한 식사를 방해한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도저히 그냥 지나갈 수는 없는 맛이랄까.

맛있는 고기를 잘 얻어먹었으니 이제 다른 테이블에 앉아 본격적인 혼밥에 들어간다. 찌개와 짜글이 중에 고민하다 국물이 자작한 통돼지 볶음으로 결정했다. 주방에서 조리가 다 되어 나오는 볶음을 한 국자 덜어 밥에 얹고 김 가루를 뿌려 비비면 된다. 밥에 얹은 계란 프라이는 없어선 안 될 조연이다.

이 맛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깊고 깊은 감칠맛의 폭풍이라고 말하면 와닿을지 모르겠다. 적당히 기름이 섞인 신선한 돼지고기가 푸짐하게 들어가 있고, 여기에 너무나 잘 담근 김치, 그리고 숭덩 썰어 넣은 파와 양파의 달큰함이 어우러진다. 굉장히 진한 맛인데 맵거나 짜지 않고 부드럽다. 자연스러운 단맛이 올라오지만 여느 식당처럼 너무 달달해 혀가 아리는 법도 없다. 먹을수록 더 먹고 싶은 음식이 바로 여기 있다.

양도 워낙 많다. 제법 먹었는데도 끝이 안 보인다. 아낌없이 퍼서 넉넉하게 비볐지만 결국은 밥이 모자란다. 그러나 탄수화물을 너무 먹어선 안 되는 법. 공깃밥을 추가하고 싶은 욕망을 애써 누르며 밑반찬 하나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 먹었다. 일하러 갈 시간이다. 너무 짧아 아쉬웠던 만남을 잘 먹었다는 인사로 마무리하고 가게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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