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이 약속과 노란 리본은 단순한 애도의 표현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분명한 물음과 요구가 담겨 있었다.
"왜 아무도 구하지 않았는가?" "왜 침몰했는가?"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답답한 물음 끝에 시민들이 외친 구호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었다. 이 구호는 세월호참사에서 처음 등장한 것이 아니다. '진상규명'이라는 구호는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일이 벌어질 때마다, 슬픔이 길어질 때마다 등장하곤 했다. 용산, 강정, 쌍용, 그리고 5.18과 4.3 등, 한국 사회의 여러 국가폭력 사건 속에서 반복되며 쌓여온 시민들의 절박한 외침이었다.
그러나 세월호참사 초기에는 국가폭력 사건과 달리 용의자나 가해 주체가 분명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국가폭력에 저항하는 구호였던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이 참사 초기부터 외쳐졌다는 사실은 다소 의아할 수 있다. '누가 잘못했는가'가 분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주저없이 진상규명을 외쳤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진상규명, 정치적 선택이 되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는 '재난, 인간의 존엄을 묻는 시간'이라는 안내서를 발간하며, '사고'와 '사건'을 넘어 세월호참사에 '참사'라는 이름을 붙은 과정과 진실의 연관성을 설명한다. '사고'라는 말은 어쩌다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의미를 내포함과 동시에 사실의 확인이 초점이 되는 경우가 많은 반면, '사건'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의미를 동반하는 동시에 진실의 추출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게 된다고 설명한다. 나아가 '참사'는 그 사건에 대한 해결 혹은 그 사건을 가능하게 한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운동 주체가 구성될 수 있는가에 따라 이름 붙여질 수 있으며(정원옥) 그러므로 모든 참사는 사회적 참사라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세월호 '사고'를 '사건'으로, '사건'에서 '참사'로 명명한 것은, 너무나 비통한 사건이 다시 되풀이 되지 않도록 중대한 사회변화를 이끌어 낼 정치적 선택을 요구하겠다는 선언이며, 진실의 추출을 중요한 과제로 삼겠다는 다짐인 것이다. 즉 우리는 사회를 바꿀 '정치적 선택'으로서 '진상규명'을 외친 것이었다.
불분명한 것들 속에서 확실한 한가지는 '국가가 구하지 않았음'을 우리가 목격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바꿔야 할 대상 또한 분명했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재난참사 앞에서, 우리는 국가와 사회를 바꾸기 위해 '진상규명'을 외쳤다.
반면, 국가는 진실을 감추며 끝내 국가폭력을 자행했다. 특조위를 방해하고 피해자를 불법사찰했으며, 수사외압과 당일 컨트롤타워의 행적을 대통령기록물로 30년간 봉인하는 등 직접적인 진실은폐에 나섰다. 이는 '진실을 요구하는 피해자를 억압한 권력'을 마주한 순간이었고 세월호참사가 참사를 넘어 국가범죄, 국가폭력이 되는 순간이었다.
이제 세월호참사의 진상규명 요구는 국가폭력에 맞선 역사적 저항의 연장선에 있다. 우리는 '진실을 알 권리'를 침해한 국가폭력에 대항하여 싸우는 경험을 통해, 자연스레 '피해자의 알 권리', '국민의 알 권리'를 체득하게 되었다.어쩌면 '진실을 알 권리'는 4.16운동의 결실 중 가장 귀중한 것인지도 모른다.
진실을 찾는 과정은 생각보다 느리고 복잡했고, 자주 멈춰 섰다. 그럼에도 이 길을 걸어온 이유는, 진실이 밝혀져야 그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지난 10년간 수많은 국민이 함께해온 거대한 법제화 운동, 조사활동들을 모두 정리하기는 어렵다. 다만 굵직한 흐름 중심으로 안내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