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살이던 1996년 장선우 감독 <꽃잎>에 출연했던 이정현을 본 관객들 반응이었다. 당시 영화 촬영 중임을 몰랐던 마을 주민이 헤진 옷을 입고 돌아다니던 이정현을 불러다가 밥을 해먹이기도 했다는 건 영화계에서 이미 유명한 일화다. 그만큼 강렬한 데뷔를 알렸던 그가 배우가 아닌 대중가수로 한 시대를 풍미했고, 15년이 지난 2011년에야 박찬욱·박찬경 감독의 <파란만장>으로 다시금 배우의 길을 걷는다.
배우 이정현을 2일 오후 전주영화제에서 만났다. 그는 올해의 프로그래머로 선정돼 본인이 정한 6편의 작품을 영화제에서 상영 중이다. 대학원 재학 중 만든 단편 <꽃놀이 간다> 또한 초청돼 감독이자 배우·프로그래머 등 말대로 만능 엔터테이너의 면모를 보이고 있었다.
이정현의 능력이 빛을 발한 건 다름 아닌 영화제 게스트로 장선우 감독과 박찬욱 감독을 모신 데 있었다. 본인의 데뷔작과 배우 복귀작을 연출한 두 감독, 특히 장선우 감독은 2017년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 심사 위원으로 활동한 이후 이렇다 할 공식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2021년 제1회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수상자이자 <꽃잎> 촬영이기도 했던 유영길 촬영감독의 대리 수상으로 잠깐 무대에 섰던 게 최근 행적이다.
당시 임신 초기였던 이정현은 "토를 계속 할 정도로 몸이 안 좋았던 때고 노산이라 위험할 수도 있었는데 힌츠패터보도상 진행을 맡아달라는 요청이 있었다"며 "응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장선우 감독님이 오신다기에 너무 뵙고 싶어서 갔다. 그때 정말 오랜만에 뵌 것"이라 당시 일화를 전했다. 그러면서 "이후로 또 보자고 하셨는데 못 뵈다가 이번에 제가 전화를 드렸고 흔쾌히 응해주셨다"고 덧붙였다.
이정현을 배우의 길로 이끌어 준 <꽃잎>은 미성년자였던 그에게도 힘든 기억이자 극복해야 할 대상이기도 했다.
"영화에 나온 제 상처들은 대부분 진짜 상처였다. 이후 가수로 데뷔하게 되면서 잊고 있었는데 사석에서 만난 박찬욱 감독님께서 왜 연기 안 하냐며 저도 제대로 보지 못한 <꽃잎>을 영상자료원을 통해 DVD로 10장 구워오셔서 배우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하셨다. 보면서 그때 소녀가 너무 불쌍해서 울었다. 역시 장선우 감독님이 거장이구나 깨달았다.
가수로 활동하다가 박찬욱·박찬경 감독님의 <파란만장> 이후로 많은 작품이 들어왔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소속사에서 저예산 영화라고 거절했는데 박찬욱 감독님께서 시나리오를 보시더니 왜 안하냐, 하라고 해주셔서 하게 됐다. 그 영화가 여기 전주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으며 극장 개봉도 할 수 있게 됐다."
"40대 되고 아이 낳으며 세상 보는 관점 풍부해져"
전주영화제 1회 때 홍보대사기도 할 정도로 영화제와 인연이 깊었다. 올해의 프로그래머로 이정현은 <꽃잎>, <파란만장>,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복수는 나의 것>을 비롯해 다르덴 형제의 <더 차일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아무도 모른다>를 선정했다. 여섯 작품 모두 예매가 시작되자마자 1시간 만에 전석 매진됐다는 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