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새벽, 잠에서 깨신 아버지가 제게 건네는 안부인사입니다. 단순한 아침 인사가 아니라 "나 살아있어"하는 푸른 신호등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제 귀가 잘 안 들려 보청기를 끼시는 아버지지만, 새벽이라 아직 보청기 없는 아버지께 웃으며 손을 흔들어 답하는 이 순간이 요즘 저는 가장 행복합니다.
저는 이처럼 아침에 일어나신 아버지 웃는 얼굴을 보며 일과를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런 습관은 몇 해전 제가 암을 진단받았을 때부터 더욱 굳어졌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예상보다 적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 이후 하루하루 삶도 몰라보게 소중해졌습니다.
어버이날이 가장 소중한 이유
아버지, 오늘은 제게 5월 가정의 달 중 가장 뜻있는 날입니다. 어버이날인데, 아버지가 우리 곁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돌아가신 어머니도 기뻐하실 겁니다. 이날은 아버지 어머니 두 분을 함께 기릴 수 있습니다. 제가 아버지 생신보다도 어버이날을 더 소중히 여기는 이유입니다.
엊그제 미리 전곡에 있는 어머니 묘소에 다녀온 것도 어버이날을 축하하기 위한 자리였습니다. 이어 어린이날 연휴 작은 아들 부부도 집에 와 할아버지에게 인사하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고 기특했습니다.
애들이 반가워 그 어느 때보다 크게 환하게 웃으며 행복해하는 아버지 표정을 보니 저는 흐뭇하면서도 왠지 울컥합니다. 그만큼 할아버지와 손주는 가깝고 친근한 대상입니다.
아들로서 무엇보다 아버지가 건강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버지께서 특별한 찬이 없어도 식사 잘하시는 것도 제겐 복입니다. 노환으로 기력이 적어지셔서 걱정이지만, 매일 혼자서 경로당에 다녀오시고 스스로 복용할 약도 빠짐없이 챙겨드시니 아들로서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어제는 아버지 혼자 안과병원에서 진찰받고 안약을 타왔다며 자랑하셨었지요. 왜 말도 없이 당신 혼자 가셨느냐고, 위험하다고 말해 아버지와 제가 잠시 옥신각신했습니다.
물론 아들인 제게 부담 주기 싫어하신 일이겠지만, 저는 혹시나 일이 생겨 다치셨으면 어땠을까 싶어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건강한 편이시지만 청력과 시력이 좋지 않은 편이니, 다음부터는 꼭 제가 모시고 가겠습니다.
아버지의 이북고향 시절과 월남해서 살아온 인생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들을 때마다 실화라는 사실에 흥미롭고 즐겁습니다. 드라마틱한 실향민의 삶은 어쩌면 그 자체가 분단과 엮인 살아있는 역사일 것입니다.
아버지 덕분에 저도 삽니다
매일 저녁 식사를 차려드리면서 아버지께 막걸리 한 잔을 따라 드리는 것도, 아들인 제게는 작은 기쁨입니다. 암 투병 와중에도 제가 용기 잃지 않고 힘을 낼 수 있는 것도 정정한 아버지 덕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