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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대국 아이 위해 체포된 여성... 아동 권리 기구는 그렇게 출발했다
2024-11-24 12:00:42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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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대전이 이제 막 끝난 1919년, 패전국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기근이라 해도 좋을 궁핍함을 겪고 있었다. 전란이 지속된 5년여의 시간 동안 막대한 전비를 감당한 건 물론, 돌보지 못해 황폐해진 토지며 승전한 연합국 측의 경제제재로 금융과 무역까지 봉쇄돼 일반 시민의 삶은 눈 뜨고 보기 어려울 만큼 끔찍했다. 파리 강화회의와 베르사유 조약으로 패전국이 영토할양은 물론, 막대한 배상금까지 부담케 되며 정부가 적자를 면하고자 화폐를 마구 찍어낸 것은 자국 경제에 치명타를 입혔다.

경제가 무너지면 그 사회의 가장 약자가 큰 타격을 입게 마련이다. 아동,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어린 아이들이 처한 상황이 꼭 그와 같았다. 당장 먹을 것이 없는 상황에서 수많은 아이들이 배를 곯았다. 아사자가 속출하고 영양실조는 놀라울 것 없는 질병처럼 취급됐다. 그러나 이는 패전국의 문제일 뿐, 역시 경제 재건에 여념이 없던 승전국 측은 저들의 원수였던 이들을 굳이 돌아보려 하지 않았다.

이 시절, 영국의 상징이라 해도 좋을 런던 트라팔가 광장 복판에서 전단지를 돌리던 여성이 있다. 여성에게 참정권도 없던 그 시절, 불과 몇 년 전까지 총칼을 맞대고 싸웠던 패전국의 아이들을 구해야 한다며 관심을 독려하는 전단이었다. 전단지엔 기아 상태에 놓인 아이 사진과 함께 이들을 구해야 한다는 호소가 담겨 있었다. 여자의 이름은 에글렌타인 젭, 아동권리와 관련해 대표적인 세계적 비정부기구(NGO)가 되는 '세이브더칠드런'의 창시자다.


아동권리 일깨워온 CRFF의 10년

적대국 아이를 구하기 위해 돈을 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당시 현행법에 저촉됐다고 한다. 모금을 독려하던 그녀가 전시 국토방위법 위반으로 체포돼 유죄판결을 받았다던가. 그때 부과된 벌금은 명목상의 5파운드가 고작이었다는데, 그녀를 기소해야 했던 검사는 젭의 숭고한 행위에 공감을 표하며 그 벌금을 대신 내주었단다. 이것이 세이브더칠드런이 받은 첫 기금이라고.

굳이 이 단체의 창설 이야기를 하는 건 그것이 충분히 극적이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지난 한 세기 동안 세이브더칠드런은 고통받는 아이가 있는 곳이면 그곳이 어디든 달려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왔다. 전쟁은 아이에게도, 아니, 아이에게 더욱 심각한 위협이 되곤 한다. 한국전쟁 가운데서도 그들의 도움이 있었고, 오늘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 또한 외면하지 않고 관심을 촉구하는 것이다.

아동권리, 아이의 권익을 향상케 하는 일이 계도적이며 계몽적 구호로 가능한 것이었다면 진즉에 이뤄졌을 테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란 그리 쉽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어서 여전히 아동의 권리에 무감각한 이들이 너무나도 많다. 전쟁과 질병에 맞닥뜨린 나라 바깥 아이들은 물론이고, 아동학대로 고통받는 나라 안 아이들까지, 그에 대한 관심을 적절한 수단으로 환기할 필요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세이브더칠드런이 지난 2015년부터 아동권리영화제(CRFF: Child Rights Film Festival with Save the Children)를 이어온 데는 이러한 이유가 있다.


납작한 문제인식, 오리지널 영화가 있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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