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윷이야." "한 번 더 하세요." "촌사람이 잘하네." 정진동이 윷을 던지자 거실에 있던 이들이 한마디씩 했다. 말판 옆에 있던 이도 덩달아 신이 났다. 오랜만에 하는 윷놀이는 한껏 분위기가 올랐다. 집주인은 떡과 과일, 음료수를 나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여사님 그만 앉으세요." "저는 괜찮아요." 안쓰러워하는 조화순 목사의 말에 집주인 공덕귀 여사(윤보선의 아내)의 대꾸였다. 윤보선 전 대통령은 전국의 도시산업선교와 특수선교 실무자들을 초대했다. 정부와 중앙정보부의 탄압에 시달리던 조지송, 조화순, 권호경, 정진동 등 사회선교 관계자들은 이날 하루를 즐겁게 보냈다.
윤보선은 유신시대 말기인 1978년 1월 4일 자신의 집에 사회선교 실무자들을 불러 위로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저녁을 먹고 자리를 파한 이들이 권호경 목사의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밤늦게 이야기꽃을 피운 이들은 단잠을 잤다.
기업가들에게 복음서 같았던 그 책
그렇게 윤보선 전 대통령의 초대로 기운을 낸 이들이 다시 모임을 가진 것은 불과 사흘 만이었다. 회의실에 모인 이들의 테이블에는 신문이 한 부씩 있었다. 1면 하단에 대문짝만한 책 광고가 눈에 띄었다. 광고를 본 이들이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산업선교는 무엇을 노리나?> 홍지영이 지은 이 책은 도시산업선교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기업가들에게는 복음서나 다름 없었다. "산업선교 때문에 골치를 앓고 계시는 기업주는 속히 이 책을 읽어보세요"라는 문구에 이어 도시산업선교를 악마화했다.
"생산력을 마비시키고 노사 간의 대립을 조장시키며 계급투쟁의 격화를 노리는 맹랑한 일들이 나라 안팎에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바로 '산업선교'라는 간판을 내세운 일부 목사·신부들의 의식화 작업이 곧 그것입니다."
홍지영은 이 책에서 도시산업선교회와 공산당을 등치시켰다. 결론적으로 도시산업선교회 실무자들을 악마로 묘사했다. 금란출판사에서 1977년 11월에 펴낸 이 책은 정가 600원이었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전국 주요 일간지에 대문짝만한 광고를 실었다.
단체주문이 쇄도했다. 단체주문은 주로 국가기관과 기업체에서 했다. 이 책의 출판 과정에서 중앙정보부(국가정보원의 전신)가 깊숙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은 여기저기서 제기됐다.
전 KCIA(중앙정보부) 직원으로 알려진 홍지영은 <산업선교는 무엇을 노리나?>에서 "산업선교란 공산당 간접침투 전략으로서 KGB(국가보안위원회)를 통해 WCC(세계교회협의회)를 매개로~ 산업선교회는 공산당 전략에 따라 노동 사회에 침투한 용공 세력"이라고 규정했다.
사실 이 책은 유상판매된 것이 아니라 수십만 부를 무상으로 배포했다. 이 책은 정부의 적극적인 권장으로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 당시 경상남도 조병규 지사가 1978년 3월에 도내 주요 단체에 보낸 '안내 말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
"<산업선교는 무엇을 노리나?>는 숙독하여 본즉 들은 것보다 훨씬 좋은 책입니다. 산업선교라는 괴물이 여러분과 근로자들의 틈새를 스며드는 기회를 주지 말아야 하겠으며...."
홍지영의 글은 한국노총을 통해 노동계에도 조직적으로 배포됐다. 1978년 4월 20일, 전국금속노동조합이 각급 지부장에게 보낸 공문에는 "본 노조 산하에도 과거 일부 사업장에 종교 세력이 침투해 혼란을 야기시켰으나 (중략)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홍지영 <이것이 산업선교다>라는 책자를 전 조합원이 구독, 종교단체가 과연 어떤 단체인가를 인식시켜 사전 침투 방지에 대비코저 합니다"라고 적혔다(영등포산업선교회 40년사 기획위원회, <영등포산업선교회 40년사>).
유신 시대 말기인 1978년 새해가 밝았지만 한반도 땅은 꽁꽁 얼어붙었다. 그런 와중에도 민중들의 '인간 선언'은 꿈틀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