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교수 및 학교 규탄 시위로 학교 전체가 떠들썩하다. 고학년이라 주 2회밖에 학교에 나가지 않는데, 대자보와 포스트잇, 빨간 래커로 가득한 학교를 볼 때마다 흠칫하곤 한다. 가장 놀랐던 순간은 버릇처럼 켜두는 저녁 뉴스에 우리 학교 시위가 보도됐을 때다. 서울이지만 변두리에 위치해 좋게 말하면 고즈넉하고 나쁘게 말하면 심심했던 학교가 대대적인 수준의 관심을 받은 건 재학 중 최초였다. 다른 학교 친구들이 시위와 관련된 링크를 보내면서 안부를 물어줬을 땐 이런 게 언론의 역할이고 연대일까 싶어 마음이 찡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지겹다, 시위가 아니라 시위를 둘러싼 관심이.
시위가 초기부터 언론의 관심을 받은 건 아니었다. 처음에는 학교 내부에서만 이야기가 나오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동덕여대의 공학 전환 반대 시위와 시기가 맞물리면서, 우리 학교 역시 주목받게 됐다. 학교를 붉게 물들인 '래커' 역시 눈길을 끄는 데 한몫했다. 굵직한 신문사와 방송사에서 학교와 시위 현장을 사진 찍고, 학우들을 인터뷰했다. 침묵으로 일관하던 학교도 시선이 쏠리자 부랴부랴 비상대책위원회를 조직했다. 새로운 형국을 맞이했다면서, 나를 비롯한 학생들은 언론을 반겼다.
그러나 갈수록 보도의 행태가 이상하게 흘렀다. 대부분의 기사가 래커에만 초점을 맞췄다. 래커칠은 목소리를 내는 방식 중 하나일 뿐임에도, 헤드라인에 '붉은 래커'가 강조된 기사가 쏟아졌다. 기사의 주어는 '피해 학생 보호와 범죄 재발 방지에 소극적인 학교'가 아니라 '래커칠 하는 학생'이었고, 정작 시위의 본질인 시위의 원인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했다. 몇몇 기사는 우리 시위를 '갈등'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성범죄자 교수와 피해 학생, 가해자가 피해자가 명확한 사안에 항의하는 데 갈등 따위의 '중립 기어' 표현을 쓰는지 의문이 들었다.
언론이 부수적인 요소에만 관심을 기울이며 사안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자, 여론도 이상한 방향으로 향했다(혹은 여론과 언론, 서로가 서로를 격려했다는 표현이 옳을지도 모른다). 가해자가 이미 성범죄 사실을 인정했음에도 피해자를 '꽃뱀'이라고 욕하는 2차 가해 댓글이 달렸다. 비난 수위가 높은 댓글 창에 학생들이 나서서 '댓글 정화 작업'을 벌이기도 했다. 남초 커뮤니티는 입에 담을 수조차 없는 여성혐오적 단어들로 학생들을 욕했다. 래커칠을 지우는 데 비용이 얼마나 들지 시시덕대거나, 학교 측이 학생들에게 배상을 청구해 '참교육'해야 한다고 떠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