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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재산 96만 원, '망한 아이돌'의 삶
2024-12-22 18:33:55
정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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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하다 보면 가끔 엔터 업계 쪽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다. 대개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인사를 하러 온 '을'들로부터 의자 등받이에 한껏 몸을 묻은 자세로 인사를 받고 '열심히 하라'고 말한다. 혹은 '을'들이 먼저 '열심히 하겠다'며 허리를 깊이 숙인다. 그럴 때 어떤 '갑'들은 이렇게 말한다. 열심히 하는 건 다들 열심히 해. 잘해야지. 팬들 앞에서는, 무대 위에서는 우상으로 대우받는 '아이돌'들이지만 연습생 시절이거나 무명 시절일 때의 모습은 대개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게 허리를 꺾어 인사하는 청년들의 얼굴을 유심히 본다. 그들의 얼굴에는 기대감으로 상기된 표정과 조금이라도 책잡힐 언행을 하지 않기 위해 날을 세운 긴장감이 두꺼운 화장을 뚫고 올라와 팽팽하게 떠 있다. 그들은 음계 '솔'에 맞춘 말투와 여러 번의 연습으로 만들어진 입꼬리를 한껏 당겨올린 미소, 인성까지 철저하게 훈련을 받고 나온다. 나는 그들을 오래 쳐다보지 못하고 그만 고개를 돌리고 만다.

여기, 그런 아이돌 세 명이 제주도로 여행을 떠난다. 그들은 소위 말하는 '망돌'이다. 데뷔는 했지만 그들을 알아보는 이들은 별로 없다. 그래도 알아봐 주기를 바라며 버스 안에서 자기에게 관심이 1도 없는 여자를 향해 멋쩍은 미소를 날려 본다. '네, 맞아요. 저예요'라고 묻지도 않은 질문에 대답할 준비를 한 채.

나아가지도 머무르지도 못하는 망한 아이돌의 삶


그들이 가진 전 재산은 96만 원. 데뷔하고 어느 정도 활동을 했지만 정산은커녕 그중 한 명은 빚만 3천만 원을 떠안고 있다. 소속사가 투자했던 돈을 회수하지 못해 고스란히 당사자에게 빚으로 남은 것이다. 그나마 수중에 가진 돈 96만 원조차 의도치 않은 사건으로 날려버리고 그들은 여행경비를 벌기 위해 귤밭에서 일당을 받으며 일을 한다. 그들 인생에서 처음으로 일한 대가로서 '정산'을 받아본 것이다.

그들은 돈을 아끼기 위해 베란다가 근사한 콘도를 나와 캠핑카를 개조한 비좁은 숙소에 머무른다. 왜 캠핑카 숙소일까. 바퀴가 달린 캠핑카의 원래 목적은 어디론가 나아가기 위한 것이다. 그런 목적을 잃고 한곳에 머물러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이 시설은 더 이상 아이돌로서 살아나갈 힘도, 의지도 잃어버린 세 사람의 처지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지쳐 쓰러져도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해야 하는 삶


귤농장에서 일을 하고, 먹고, 자고, 쉬는 이야기 사이로 이들이 통과해 온 아픈 시간들이 드러난다. 매일 아침마다 체중을 재서 조금이라도 기준치를 넘으면 음식을 제한당하는 걸그룹 생활을 해오는 동안 수민은 섭식장애가 생겨서 먹으면 자꾸 토한다. 사랑이는 약에 의존해야 할만큼 아이돌 생활을 하며 마음을 많이 다쳤다. 무대에 설 때 지나치게 짧은 치마를 입어야 하는 걸그룹 여성들이 생리대를 착용할 수 없어 피임약을 먹고 억지로 생리를 멈추게 한다는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이건 명백한 학대이며 인권 유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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