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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에 버금가는 성인이 된 맹자
2025-01-31 15:47:12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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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를 찾아 추성(鄒城)으로


추성에는 맹묘(孟廟)와 맹부(孟府) 그리고 맹림(孟林)이 있다. 맹묘는 맹자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맹묘 옆에 있는 맹부는 맹자의 후손들이 살던 집이다. 맹림은 맹자의 무덤이 있는 숲이다. 거기에 맹모림(孟母林)이 있는데, 맹자 어머니 무덤이다. 맹모림은 맹자의 선대 조상들이 묻혀 있는 선산이다. 태산을 보고 나서 이들을 보기 위해 태안 남쪽으로 향한다. 태안 시내를 벗어나자 평원이 끝없이 이어진다. 공자 고향인 곡부(曲阜)를 지나 추성으로 향한다. 태안을 떠난지 1시간 40분쯤 후에 추성의 맹묘에 도착한다.

맹자(기원전 372~289)는 공자-증자-자사로 이어진 유학의 맥을 이은 중국 고대 사상가이자 교육자다. 추국(鄒國) 마안산(馬鞍山) 아래 부촌(鳧村) 출신으로, 3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 어머니 밑에서 교육을 받았다. 맹자 어머니는 아들이 교육을 잘 받아 현인이 되길 바랐다. 그러나 마안산에 묘지가 많아 무릎 꿇고 절하고 곡하는 것만 배우게 되었다. 이에 맹자 어머니는 자식과 함께 시장으로 이사했다. 그러나 상인들을 흉내 내어 소리를 지르며 물건을 팔려고 했다.


이에 맹자 어머니는 시장을 떠나 학교 근처로 이사를 했다. 맹자는 강당에서 들려오는 경전 낭독 소리에 끌려 학교에 가게 되었다. 그리고 문묘에서 행해지는 예의와 법식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맹자는 학교에서 인을 배우고 예를 익히게 되었다. 맹자는 이처럼 학문과 예의에 관심이 많았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공부가 지루해 수업에 빠지곤 했다. 맹자 어머니가 이 사실을 알고는 칼로 베틀의 날줄을 자르며 아들에게 훈계했다. 이것을 단직유학(斷織喩學)이라고 한다.

"네가 배우길 게을리하는 것은 내가 베틀의 실을 자르는 것과 같다. 천은 실이 한 가닥씩 짜여 만들어진다. 이제 실을 끊었으니 천을 완성할 수 없게 되었다. 군자가 지금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학문을 성취해 공명(功名)을 이룰 수 없다. 널리 배우고 끊임없이 질문을 하게 되면 재능과 지혜가 증가할 것이다. 학교를 자주 빠지면서 어떻게 유능한 인재가 되어 성공할 수 있겠느냐? 지금 열심히 독서해 몸을 닦고 덕을 기르는데(修身養德) 게으름을 피운다면 군자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맹자는 자사의 학맥을 이은 선생으로부터 자사의 중용지학(中庸之學)을 배웠고 이를 자신의 심성지론(心性之論)으로 발전시켰다. 그는 또한 백성을 나라의 근본으로 삼아 인과 덕으로 통치하는 왕도정치를 주장했다. 이는 민본주의 정치의 원류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공맹지도(孔孟之道)로 일컬어지는 전통적인 유학은 송나라 때 신유학인 성리학으로 발전하게 된다. 주자는 유학의 기본 경전인 『논어』『대학』『중용』에 『맹자』를 더해 사서로 삼았다.

맹묘에서 맹자의 자취를 살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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