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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80주년명문80선] 김재규, '1심 최후진술'
2025-02-22 18:53:01
김삼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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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과 격동의 1970년대는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 장군이 박정희 대통령과 차지철 경호실장을 암살하면서 막을 내렸다.

유신의 심장부가 저격되면서 강고한 벽으로 인식되던 유신의 성곽이 무너졌다. 1961년 5.16군사쿠데타를 일으켜 18년 동안 무소불위한 전횡을 일삼아 온 독재자가 사망하고 유신체제가 붕괴되었다.

내란죄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재규는 대법원의 심리과정에서 형사3부의 양병호·서윤홍 판사가 '내란 목적 살인죄'에 반대 의견을 냈고, 최종 판결 때도 민문기 판사 등 6인의 판사가 김재규에게 내란죄 불성립 의견을 냈다. 이들은 5.17전두환 쿠데타 후 모두 강제 사직당하였다.

김재규 장군은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와중에 신군부가 장악한 대법원의 확정 단계로 사형이 집행되어 경기도 광주 남한산성 공원묘지에 묻혔다. 1979년 12월 19일 육군본부 비상계엄 보통군법회의 법정에서 김재규의 1심재판 '최후 진술'이다.

국민들의 희생을 막기 위해 혁명한 것
김재규 전중앙정보부장 1심재판 최후진술

최후진술 할 기회를 줘서 고맙다. 목이 잠겨 말을 제대로 못하겠지만 끝까지 말하겠다. 본인은 지금 내란죄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합법적일 민주당 정권이 5.16에 의해 전복되었다. 유신도 또 하나의 혁명이었다고 본다. 왜냐하면 자유민주주의를 말살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10.26혁명은 건국이념과 국시에 어긋나지 않으며 민주적 기본질서를 회복하고 6.25를 통해서 수난을 겪고 생명을 바쳐 지켜온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왜 내가 내란죄로 재판을 받아야 하는가?

10.26혁명은 순수하고 깨끗하다. 정권욕도 없고 사리사욕도 없었다. 그 결과 자유민주주의의 회복이 보장되었다. 최 대통령은 민주회복을 공약했고 대통령은 현 임기를 채우지 않고 도중에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이는 과도정부를 뜻한다. '과도'란 자유민주주의로 가는 과도란 뜻이다. 10.26혁명의 목적은 달성했고 성공했다.

10.26혁명이 없었다면 긴급조치가 해제되었겠는가. 이것은 10.26혁명의 성공을 입증한다. 5.16과 10월 유신에 비하면 10.26혁명은 정정당당하다. 서슬이 시퍼런 유신체제에 정면으로 도전하여 타파한 것이다. 이는 민주회복 혁명의 완전한 성공이다. 무혈혁명은 최선이다. 그러나 무혈혁명이 안 되면 최소한의 희생은 불가피하다. 박 대통령과 민주주의 회복은 숙명적인 대결관계이다. 그의 희생 없이는 민주회복을 할 수 없었다. 유신 이후 7년이 경과하면서 영구집권을 다져 박 대통령이 살아 있는 한 20년 내지 25년까지는 민주회복이 될 수 없었다. 국민들의 많은 희생을 막기 위해 내가 혁명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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