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수괴로 지칭되는 윤석열 대통령은 "2시간짜리 내란이란 것이 있느냐. 아무 일도 없었잖냐"며 당당하지만 2024년 12월 3일 이후 내 일상은 변했다. 몸은 한껏 예민해졌다. 평소에는 베개에 머리만 대면 잠들어버리는 타입인데 그날 이후 나는 한밤중에 들리는 작은 소리에도 곧바로 벌떡 일어난다. 별다른 일이 아님을 확인했다고 해도 다시 깊이 잠들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길까 봐, 자는 동안 변화를 감지하지 못했다가 이 세상에서 혼자 사라질까 봐 내 위기의식이 감각을 한껏 예민하게 다듬어놓은 것이다.
12월 3일, 인터넷 화면에 뜬 '계엄' 단어를 보며 제일 처음 한 생각은 '내일 회사에 가도 되나?'였다. 나는 출판사에서 일하는 편집자이고, 속보로 뜬 계엄 포고령 제1호 3에는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출판계 원로들이 지나가듯 이야기했던, 직접 편집한 책이 금서로 지정되고, 책 마지막 장 판권 이름이 적힌 탓에 정부에서 찾아와 하나둘 어딘가로 끌고 갔다던 그 엄혹한 시절을 나도 겪는 건가? 시민들과 국회의 빠른 조치로 비상계엄이 해제되지 않았다면 내가 몸담은 업계는 탄압당하고 나의 직업은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실질적인 위기를 느낀 이유는 간단하다. 윤석열 정부는 집권 내내 출판계 및 언론계를 찍어 누르는 태도를 고수해왔기 때문이다. 2022년부터 정부의 출판 지원사업 규모가 꾸준히 줄어든 것이 가장 대표적이다. 어쩜 이렇게 디테일한지 혀를 내두를 정도다.
국내 문학 창작도서를 지원하는 '문학나눔' 사업과 교양·학술 도서를 지원하는 '세종도서' 사업은 윤석열 정부 이후 꾸준히 지원금이 줄어들었다. 출판진흥원에 따르면 2023년 두 지원사업은 140억 원 내외 규모였으나 2024년 115억으로 대거 축소되었다. 세종도서 교양부문의 일부인 '문과 분과'를 문학나눔 도서 보급 사업과 통합시켰을 뿐 아니라 2023년 520종을 선정하던 문학나눔 도서를 2024년에는 390종만 선정했다. 이는 특히 출판 불황기에도 양서를 출간하며 어떻게든 버티고 있는 교양·학술 도서 출판사들에게 실제적인 생존의 위기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