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중가요 연구에 새로운 기반을 마련한 작품 <한국 가요사>를 쓴 재일한국인 박찬호 선생.
작년 9월 25일에 여든한 해 삶을 마감한 그가 세상에 남긴 것은, <한국 가요사>만이 아니다. 1990년대 이후 많은 저술과 CD 복각 작업에 원천이 되었던 '박찬호 컬렉션'도 <한국 가요사> 못지않은 박찬호의 유산이다(관련 기사: 민중의 한 담은 <한국가요사> 저자 박찬호 선생 타계 https://omn.kr/2bm0j).
1930~50년대 SP음반 280장으로 구성된 박찬호 컬렉션은 지난 2017년에 도록으로 간행되어 그 전모가 공개된 바 있는데, 이번에는 그 중 일부를 직접 소리로 들어 보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옛 가요 사랑 모임 유정천리에서 준비한 '박찬호 컬렉션 감상회'로, 오는 3월 15일 토요일 오후 2시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집 3층 세미나실 1에서 열린다.
박찬호 컬렉션의 기원은 1930년대 후반 일본에서 시작되었다. 1938년 무렵 어느 날, 도쿄에 살고 있던 일본 청년 사이토 초지(斎藤晁司)는 라디오를 통해 조선 경성에서 중계되는 노래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고 한다.
그에게 깊은 이상을 남겼던 노래는 가수 고복수(高福壽)와 이난영(李蘭影)이 함께 부른 <신 아리랑>이었고, 이후 사이토 초지는 조선 유행가에 관심을 가지며 음반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사이토 초지가 1945년 이전까지 수집한 조선 유행가 SP음반은 대략 200장 정도 되었는데, 2/3 이상은 고복수와 이난영이 전속으로 있었던 오케(Okeh)레코드에서 제작한 것이었고, 그밖에 콜럼비아(Columbia)·빅타(Victor)·태평(太平)·폴리돌(Polydor) 등 당시 유력 음반회사의 음반도 포함되어 있었다.
<한국 가요사> 저자 박찬호가 음반 수집가 사이토 초지의 존재를 알게 된 때는 처음 책을 낸 직후인 1987년 11월이었고, 연락처를 수소문한 끝에 연말에 결국 사이토 초지와 그의 음반을 만날 수 있었단다.
박찬호는 도쿄 사이토 초지 자택에서 음반을 보았던 당시를 생전에 회고하며 '스이엔(垂涎)'이라는 표현을 쓴 바 있는데, 탐나는 것을 보게 되어 군침을 흘릴 정도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