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내신 성적 백분위 0.7%와 95%의 아이가 같은 교실에 앉아 수업을 듣고 있다. 중학교 3년 동안 전교 1등을 독차지한 아이와 꼴찌를 벗어난 적이 거의 없는 아이가 나란히 앉아 있는 거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그 둘의 격차가 나날이 커져만 간다.
수업하는 교사는 괴롭다. 강의의 수준을 어디에 맞춰야 할지 난감하다. 상위권에 맞추면 하위권 아이들은 수업 내용을 당최 알아듣지 못하고, 하위권에 맞추면 상위권 아이들은 지루해하며 시간이 아깝다고 말한다. 재미있는 수업도 수준이 엇비슷해야 가능한 법이다.
그렇다고 중간에 맞추기도 뭣하다. 자칫 게도 구럭도 다 잃을 수 있어서다. 교사들이 이구동성 말하는 가장 '교육적인' 수업 방법은 학습 목표에 맞춰 핵심 내용을 설명한 뒤 수준에 맞게 개별적으로 지도하는 것이다. 이는 어디까지나 '이상'일 뿐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줄 세우기 만연한 교실... 괴로운 교사들
교사 1명이 주어진 시간에 25명의 아이를 일일이 상대하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그러자면 내용에 대한 설명과 사용하는 어휘부터 달라야 한다. 교과서를 읽을 순 있지만,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현재로선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이야기다.
오해할까 싶지만, 상위권과 하위권을 따로 분반하자는 게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역대 정권마다 '교육의 수월성' 운운하며 줄 세워 나누기에 급급했다. 학교를 구분하고 같은 학교 내에서도 수준별 수업을 진행했지만, 예외 없이 교실의 황폐화로 귀결되었다.
이명박 정부의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는 그 명징한 사례다. 이후 국제고, 특목고, 자사고, 자공고, 일반고, 마이스터고, 특성화고 등 그 이름조차 헤아릴 수 없는 다양한 학교들로 분화됐다. 말이 좋아 다양화지, 기실 성적에 따른 고등학교의 서열화였다.
역대 정권의 교육개혁은 후유증만 남긴 채 대부분 용두사미로 끝났다. 대한민국 교육의 난맥상은 조물주가 와도 해결하지 못한다는 자조만 남았다. 사교육비를 절감하겠다는 목표를 내걸면 되레 사교육비가 늘어났고, 지방대를 살리겠다고 외칠수록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는 더욱 커졌다.
이젠 누구도 정부의 교육개혁 의지를 믿지 않는다. 교사인 나는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지만, 그 소박한 기대마저도 허황한 꿈이 되고 있다. 여전히 대입 제도 하나만 손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걸로 믿는 이들이 태반인 현실에서, 교육은 방향타를 잃고 만신창이가 됐다.
올해 사교육비가 사상 최고액을 찍었다고 언론은 아우성치지만, 정작 아이들의 학업 역량에는 큰 변화가 없다. 언뜻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은 느낌마저 든다. '친구 따라 강남 가듯' 학원에 가고, 교육과정과 대입 제도가 바뀔 때마다 학생과 학부모들은 불안한 마음에 더욱 사교육에 의존하게 되는 악순환이다.
다만, 근래 들어 확연히 달라진 게 있다. 대입이 고등학교의 존재 이유인 건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지만, 교실 안을 들여다보면 과거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상위권과 하위권의 성적이 양극화하는 상황에서 전쟁 같은 대입 경쟁이 '그들만의 리그'로 굳어지는 모양새다.
30%! 대충 가늠해 본 대입 경쟁자의 비율이다. 모두 대학에 진학하겠다고 인문계고등학교를 선택했다지만, 나머지 70%는 대입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거칠게 말해서, 의치대와 '인 서울' 대학, 지방 거점 국립대에 진학이 가능한 정도만 대입에 관심을 둘 뿐, 대다수는 '남의 이야기'다.
지방 거점 국립대 진학 가능권인 30%는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학교 설명회 때의 진학 실적 '기준선'이기도 하다. 그 아래 대다수 대학은 '기타'로 분류되고, 소개조차 되지 않는다. 이는 학교 교육의 실질적 대상과 목표가 상위 30%에 맞춰져 있다는 점을 고백하는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