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침 운동이 끝나고 한 친구의 제안으로 점심 '번개팅'을 하게 되었다. 수영장에서 가까운 음식점에 들어갔다. 음식이 나오기 전에 이런저런 이야기로 수다의 꽃을 피웠다.
나 포함 70대 초중반 친구들 5명은 동네 이웃이자, 약 15년 전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다가 만나 함께 나이 들어가는 동지이기도 하다. 우리는 여러 가지로 통하는 점이 있어 가끔 만나 번개팅을 한다.
음식이 나오기 시작하자 무엇이 생각났는지 A가 갑자기 음식 얘기를 한다. 밀키트를 며칠 전 처음 써봤는데, 간편하니 좋았다는 얘기였다.
직접 우리던 사골 국물, 이제는 밀키트로
"명절 지나고 며칠 후에 남동생한테 전화가 왔어. 엄마한테 육개장, 설렁탕, 곰탕 등을 보내주었더니 엄마가 아주 좋아하시더래. 근데 그 얘기 들으니깐 왠지 섭섭하고 약이 오르는 거야. 그래서 남동생한테 내가 '얘, 그런 거 나도 좋아해' 했더니 동생이 우리 집으로도 바로 보냈더라고. 냄비에 넣고 끓이다가 파만 썰어 넣고 먹으니깐 편하기도 하고 맛도 좋더라. 앞으로 나도 가끔 사 먹어야겠어."
그 말을 듣고 있던 B도 "그래, 우리도 이젠 그런 거 조금씩 사 먹어도 돼" 하며 맞장구를 친다. 그는 2~3년 전까지만 해도 사골 국물도 집에서 우려내고 만두도 집에서 직접 빚었다고 한다.
"나도 지난 명절에 밀키트로 사골탕과 만두를 사서, 떡 만두 끓이고 양념 돼지 갈비도 찜을 해주었더니 아이들이 맛있다면서 잘 먹더라. 얼마나 편한지. 앞으로 계속 그러려고 해. 손이 많이 가는 일 한두 가지만 사서 먹어도 얼마나 간편하고 좋은데."
그 말을 들은 나도 아는 척을 조금 했다. 떡국 국물 같은 건 아예 사서 만드는 게 더 깊은 맛이 난다는 걸 경험으로 알게 됐기 때문이다.
"예전엔 안 그랬는데, 나도 이제는 떡국 끓일 때 사골 국물은 꼭 밀키트로 사서 끓이게 돼. 먹어보니까 집에서 만드는 것보다 더 맛있더라. 업체들은 대용량을 한 번에 끓이고 양념을 만드니깐 더 맛있나 봐. 다른 음식들도 집에서 하는 것보다 맛있는 게 많은 것 같아. 그러고 보니 우리도 점점 밀키트족이 되어가고 있네? 좋은 변화야."
친구들은 "밀키트족? 그게 뭐야?"라며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쳐다본다. 해서 친구들 앞에서 잘난 척 좀 해봤다. 밀키트족은, 밀키트로 자주 요리를 해 먹는 사람들을 뜻한다고.
밀키트란 보통 이렇다. 식사를 말하는 밀(meal)과 세트라는 의미의 키트가 합쳐진 단어로 요리에 필요한 손질된 식자재와 딱 맞는 양의 양념, 조리법을 세트로 구성해 제공하는 제품을 뜻한다. 사전 뜻을 보니 '쿠킹 박스, 레시피 박스'라고도 부른다고 나와 있다. 더 간단하게는 손질된 재료와 양념, 조리방법 등이 함께 포장되어 집에서 간편하게 조리해 먹을 수 있는 제품이라고 설명되어 있기도 하다.
왜 이렇게 잘 아느냐고? 지난해 말 TV를 보는데, 아래 자막에서 밀키트 제품이라면서 아귀찜을 광고하는 것을 보았다. 그전에도 가끔 들어왔던 밀키트였는데, 그 참에 뜻을 자세히 알고 싶어 사전을 찾아보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