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오늘, 한국인의 보편적인 교양을 위하여 소설 한 권을 골라 읽어야 한다면 어떤 책을 택하겠는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을 필두로 여러 이름들이 나올 수가 있겠다. 한국 문학의 결코 짧지만은 않은 역사 가운데 자신 있게 권할 수 있는 이들이 이제는 여럿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교양이란 최고의 무엇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보편적인 교양이라면 더욱 그렇다. 교양은 학문을 넘어 사회와 문화 전반에 대한 폭넓고 품위 있는 이해며 지식을 뜻한다. 시대의 흐름과 경향을 충실히 반영한 작품이 위 질문의 답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매달 한 권의 책을 함께 읽는 어느 모임에서 내가 김기태의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을 권한 데는 이러한 이유가 있다. 은근하지만 분명하게 변화하는 한국 문학의 추세를 읽기에도, 또 작품이 반영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을 대면하는 데 있어서도 이 소설만큼 적합한 작품이 흔치 않기 때문이다.
한국 문학에 불어온 새로운 바람
202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2024년 젊은작가상과 동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일약 한국 문단이 주목하는 신성으로 떠오른 김기태다. <2022년 신춘문예 당선소설집>에 실린 일군의 작품 가운데 단연 돋보였던 '무겁고 높은'엔 '근래 보기 드문 강력하고 단단한 작품'이란 심사평이 붙어 눈길을 끌었다. 꾸준히 추락하는 신춘문예 당선작의 수준과 갈수록 비좁아지는 한국문학의 들판 가운데서 김기태의 출현은 평자와 독자, 쓰는 이와 읽는 이 모두가 반길 만한 소식이었다.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은 등단작을 포함하여 김기태가 발표한 아홉 편의 소설을 묶은 단편집이다.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여러 문예지에 발표한 작품을 문학동네가 순서와 상관없이 묶어놓았다. 첫 작품은 '세상 모든 바다'로, 여섯 번째 실린 '로나, 우리의 별'과 함께 K-POP 스타와 그를 좋아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원자력 발전소 건설 문제가 화두로 떠오른 소도시 해진 출신 백영록과 한국에 뿌리를 두었으나 국적은 일본인 재일교포 하쿠의 만남으로부터 이태원 압사 사고를 떠올릴 밖에 없는 충격적 사건으로 이어지는 작품이다.
세계적인 아이돌 그룹 '세상 모든 바다(세모바)'는 사회적인 문제에 적극적으로 메시지를 던지는 독특한 그룹이다. 적잖은 팬들은 제가 좋아하는 세모바의 활동에 화답해 역시 사회적인 활동을 하길 즐긴다. 인종차별, 성소수자 차별 등에 반대하고, 기후위기 등 환경문제에도 목소리를 낸다. 영록의 고향인 해진의 원전 건설 반대 또한 주요한 활동이어서 세모바의 팬들 사이에선 작은 도시 해진의 이름이 제법 알려져 있을 정도다.
소설은 일부 팬들이 기획한 사회적 퍼포먼스가 뜻밖의 사태로 이어지며 공연장 바깥의 팬들이 서로 깔려 죽는 압사사고로 이어지는 광경을 묘사한다. 하쿠는 제가 만났던 영록을 희생자 명단에서 발견한다.
소수자의 정체성과 지역 원전 문제, 그밖에 온갖 사회적 사안 등을 깊이 파고들지 않고 흘려보내는 듯 다루는 소설이다. 세상 모든 바다가 이어져 있다는 인식처럼 경계 없이 온갖 문제에 관심을 갖고 목소리를 내려 드는 팬들은, 그러나 진실로 그 모든 문제를 바꾸어낼 신념이며 의지를 갖고 있는 것일까. 제 가수를 향해 열광적인 응원을 퍼붓는 팬들의 근시안적 애정과 시공간을 넘나드는 관심 사이의 괴리를 이 소설은 성긴 문장으로 짚어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