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과장하면 감사 인사를 50명 넘는 분에게 받았던 것 같다. 피니시 라인을 통과하고 사진 찍으며 물품보관소로 각자 흩어지는 것이 대회 '의례'이자 '식순'이었는데, 이토록 많은 분들과 인사한 것은 처음이다. 나만의 레이스가 아니었다. 다른 선수들의 목표 달성을 위한 페이스메이커로 달린 마라톤이었다.
마라토너라면 매년 3월 셋째 일요일을 기다린다. 올해는 3월 16일. 제95회 동아마라톤 겸 2025 서울마라톤이 열리는 날이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되어 명성과 권위를 가지고 있고 국제육상연맹(IAAF) 인증 국내 유일 플래티넘 라벨인 대회.
광화문을 출발하여 숭례문과 동대문디지털플라자를 돌아 청계천, 어린이대공원, 잠실대교를 지나고 종합운동장으로 들어온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마라토너 꿈의 무대이다.
마스터스 동호인의 큰 목표 중 하나인 서브 3(SUB 3, 3:00:00 이내 기록)를 담당하는 대회 공식 페이스메이커에 선정되었다. 꿈의 무대에서 꿈의 기록을 위한 도움 선수가 되어 서울을 달렸다.
페이스메이커는 마라톤에서 일정 속도를 유지하며 다른 선수들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돕는 선수이다. 1954년 영국의 로저 배니스터(Roger Bannister)가 1마일을 4분 이내 주파하는 기록(3분 59.4초)을 달성할 때 처음 도입됐다. 1980년대부터 마라톤 대회에서 활용되기 시작했으며 1990년대 이후 세계 신기록을 목표하는 대회에서 정식 운영되며 중요성이 커졌다.
페이스메이커는 주요 선수들이 체력 안배와 최적의 리듬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다. 1km 또는 5km 구간별 목표 페이스를 정하고 이를 정확히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엘리트 선수들 대회에서는 페이스메이커가 선두에서 달리며 후속 주자들의 바람 저항을 줄여주는 역할도 하며, 무리를 지어 달리는 경우, "V" 또는 "일렬" 대형을 유지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20~30km 지점에서 역할을 마치고 레이스에서 빠지는 경우가 많다. 경기 중간 합류하거나 교체하는 것은 금지된다.
비공식 레이스에서는 허용하기도 한다. 2019년 이네오스(INEOS) 1:59 챌린지에서 엘리우드 킵초게(Eliud Kipchoge) 선수가 42.195km를 달리는 동안 스무 명 넘는 페이스메이커가 일정 거리마다 교대로 V자 대형을 이루며 바람 저항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사용했다.
킵초게는 1시간 59분 40초를 달성하여 사상 최초 2시간 이내 마라톤 풀코스 거리를 달린 신인류가 되었다. 비공식 이벤트였기 때문에 정식 기록으로 인정되지는 않았지만 전 세계 사람들이 생중계로 지켜보며 함께 가슴 졸이고 환호하였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