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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학원가 포기하고 태백산맥 넘을 용기 낸 사람들
2025-03-17 15:11:11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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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생 열 일곱 명이던 학교에 스무 명이 유학을 왔다. 교감 선생님도 없이 겨우 5 학급을 유지하던 학교는 6 학급으로 늘어났다. 교무실에는 교감 선생님과 교무행정사님 한 분의 자리가 추가되었다. 전교생이 37명이나(?) 되는 까닭에 급식실이 시끌벅적해졌다. 올해 내가 근무하는 양양 시골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일이다.

저출생이 일상화되며 시골 읍면 지역의 학교가 문을 닫는 모습은 특별하지 않다.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과반이 수도권에 살 듯, 시골에서도 인구의 편중 현상이 발생한다. 새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읍내 중심지에 아이들이 몰리는 것이다. 그 결과로 입학생을 받지 못한 시골 학교는 모래성이 바람과 파도에 서서히 무너지듯 폐교 절차를 밟는다.

시골 학교를 지키기 위한 자구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승마, 골프 등 도시 지역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특성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학교가 전국적으로 여럿 생겼다. 어떤 산골 학교는 숲 체험을 중심으로 생태교육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 결과 학생수가 획기적으로 증가한 학교도 나왔다. 그러나 늘어난 학생수만큼 같은 행정 구역 내에 있는 다른 학교 학생수는 줄었다. 쉽게 말해 지역 내 전체 초등학생 수는 거의 변동이 없는데 특정 학교만 규모를 키운 것이다.

하지만 강원 농어촌 유학은 같은 행정구역 내 학교끼리의 '파이 빼앗기 게임'인 학생 유치 경쟁을 완화시켰다. 유학생은 과밀학급으로 고생하는 지역에서 왔기 때문이다. 올해 유학 온 학생들의 주소지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유학생 전원이 서울과 서울 인근 도시에서 온 친구들이었다. 이제 굳이 폐교를 막기 위해 인근 학교 학생을 무리해서 유치할 필요가 없어졌다.


2025년 강원 농어촌 유학생 289명

강원 농어촌 유학은 도시와 농어촌의 상생을 지원하는 도농교류 프로그램으로 시작했다. 도시 아이들은 강원도의 풍요로운 자연을 누린다. 시골 아이들은 사라질 뻔한 우리 동네의 학교를 지키고 새 친구와 만날 수 있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시도다.

강원 농어촌 유학의 역사는 짧다. 예전부터 귀농의 형태로 도시에서 시골로 이주하는 분들은 계셨다. 그러나 관에서 주도하여 학기 단위로 도시 아이들이 시골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유학은 2023년 하반기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작년에 우리 학교가 농촌 유학 프로그램을 신청한다고 했을 때 반신반의했다. 유학을 시작하면 최소 반년(1학기)을 살아야 한다. 어린 초등생 자녀만 보낼 수는 없으니 보호자도 동행하기 마련이다. 학교와 주거지를 옮기는 건 큰 변화다. 그래서 속으로만 생각했다. 강원도 구석까지 누가 얼마나 오겠나. 한 집, 두 집?

명백한 오판이었다. 우리 학교를 비롯해서 바닷가 인근 학교의 학생수가 크게 증가했다. 기존 재학생보다 많은 유학생이 한꺼번에 들어온 것이다. 이렇게나 용감한 사람들이 많다니, 나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하지만 유학생 유입은 양양군만의 현상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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