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상기는 몇주 동안 내덕동과 우암동, 청주시청 부근을 걸어 다니며 상가 건물을 유심히 살폈다. 삼겹살집, 치킨 가게, 미용실, 세탁소 등이 가장 많았다.
청주 북부지역 일대를 샅샅이 뒤지며 어떤 업종의 가게들이 영업을 하고 있는지를 분석한 백상기는 자신이 창업할 업종을 최종 결정했다. 횟집이었다. 물론 그는 처음부터 횟집을 차릴 생각이었지만 시장분석을 통해 다른 음식점, 더 나아가 다른 업종의 자영업이라도 할 생각이었다.
사실 그는 지난 몇 년간 포장마차를 통해 돈을 쏠쏠히 벌었다. 큰 자본을 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포장마차는 좋은 점도 있지만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게 단점이었다. 불법 단속 문제였지만 자기 점포가 없다 보니 떠도는 부나방 같았다.
생계를 위한 방편으로 장사를 하려면 상가가 필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이유로 잘 나가는 포장마차를 접고 상가를 구해 음식점을 차릴 결심을 한 것이다.
다음 순서는 상가를 구하는 일이었다. '상가임대'라고 쓰인 곳을 찾아다녔다. 보증금과 월세가 얼마인지를 물어봤다. 신축 건물은 임대료가 비쌌고 기존에 영업을 하고 있던 상가가 가게를 내놓으면 권리금이 반드시 뒤따랐다. 권리금이 없는 곳도 있었지만 그곳은 누가 보아도 장사가 허탕을 칠만한 위치였다.
또한 청주시청 근방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상가 임대료가 너무 비쌌기 때문이다. 결국 청주의 외곽인 내덕동과 우암동으로 상가임대 대상지를 좁혔다.
몇 달간의 고생 끝에 우암동 청주MBC 근처의 15평(49.5㎡) 점포를 구했다. 백상기가 보증금 300만 원에 월세 30만 원, 권리금 1400만 원짜리 점포를 계약했다. 1992년이었다.
1년만에 임대료 100% 인상... 건물주의 갑질
"아나고 한 접시요~" "네!" 홀서빙과 카운터를 담당하는 아내 윤영화가 주문하고 주방에서 일하는 남편 백상기가 큰소리로 답했다. 부부가 성실하게 일하는 횟집은 항상 만원이었다. 사방을 둘러봐도 바다가 없는 충북지역에서는 회가 시민들이 자주 찾는 음식은 아니었다. '시오야끼'라고 불리는 삼겹살집이 가장 큰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청주에도 1980년대 후반 들어 횟집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바다 회로는 아나고가 가장 일반적이고 고급 회로는 광어가 최고의 인기였다. 민물회로는 향어, 송어가 가장 대중적이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백상기가 1992년도에 차린 횟집은 별미로 소문이 나면서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포장마차에 이어 횟집도 문전성시를 이루자 백상기·윤영화 부부의 벌어진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횟집에 갑자기 먹구름이 드리웠다. 백상기 부부가 횟집을 차린 지 1년 만이었다.
당시에는 상가 임대 계약 기간이 1년이었다. 재계약을 하려는 데 건물주가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했다. "인근 가게들과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 임대료를 인상해야겠어요." "네." 건물주의 임대료 인상 발언에 백상기는 으레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답했다.
"보증금 600만 원에 월세 60만 원입니다. 다음 달부터 시행하겠습니다." 건물주의 폭탄 발언에 백상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건물주의 얼굴이 두세 개로 보이다가 귓속에서 윙하는 소리가 들렸다. 다음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남편의 이야기를 들은 윤영화는 울음을 터뜨렸다.
1년 만에 임대료 100% 인상이라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백상기는 고민을 했다. '장사를 계속해야 하나 마나?' 계속하자니 월세가 부담되고 그만두자니 시설비와 권리금을 날릴 판이었다. 일주일간의 고민 끝에 그는 울며 겨자 먹기로 장사를 계속하기로 결심했다. 건물주를 만나 재계약을 하려는 데, 지뢰(?)가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