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와 도시화 그리고 개발과 성장이라는 이름 아래 질주하던 대한민국. 그 중심에 언제나 서울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과연 서울의 '성장'만을 기억하고 있을까? 유승훈의 <서울 시대>는 바로 그 질문을 던진다. 이 책은 화려한 마천루와 고층 아파트 숲에 가려진 서울의 진짜 얼굴, 성장의 빛과 그림자를 함께 그려내는 풍속의 기록이다.
이 책은 단순한 도시의 변천사가 아니다. 민속학자의 시선으로 포착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 시대를 살아낸 '삶의 풍속'을 생생하게 복원한다. 달동네의 억척스러운 삶, 연탄 아궁이 앞에서 벌어지던 일상의 고단함, 아파트 옥상에서 치러진 장례식과 결혼식, 주말마다 반복되던 손 없는 날 이사, 밀가루 범벅이 되던 거친 졸업식까지. 유승훈이 포착한 서울의 풍경은 단지 장소가 아니라, 시대의 상징이자 인간 군상의 축소판이다.
책을 읽다 보면, 서울이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성장통'을 겪는 한 시대의 주인공임을 알게 된다. 성장과 개발의 이면에서 갈 곳 없는 사람들이 몰려든 판자촌, 콩나물처럼 빽빽이 모인 교실, 강남 복부인의 투기 열풍, 자동차 고사를 지내던 마이카 시대, 버스 안내양들의 고된 하루, 부동산 특혜와 불평등, 여성의 자립을 위한 점집 찾기까지. '서울 시대'라는 이름의 이야기는 곧 1960~1990년대 한국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저자는 말한다. "내가 관심을 두는 것은 왕십리 똥파리요, 강남 복부인이요, 손 없는 날이요, 자동차 고사요, 소개팅이요, 마담뚜 등등 하찮은 것들"이라고. 하지만 바로 그런 '하찮은' 것들이야말로 한 시대를 가장 잘 말해주는 기록이다. 역사책에 남지 않지만, 그 시대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녹아 있는 살아 있는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자동차 고사는 근대화의 상징인 자동차와 전통적 고사가 만나 형성한 독특한 풍속이고, 복부인의 부동산 투기 행렬은 경제 성장 이면의 욕망과 불안을 대변한다. 손 없는 날에 몰려 다니던 이삿짐 행렬은 도시로 몰려든 사람들의 삶의 역정을, 달동네와 판자촌은 도시의 성장 그늘에 드리운 가난의 풍경을 보여준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