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도 절반이 훌쩍 지났음에도 국민들이 애타게 기다리는 윤석열 파면 선고가 미뤄지고 있다. 모두가 기다리다 지치고, 답답해하고,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는 시간이 흘러가는 중이다. 문학평론가이자 정치철학자로 40여 권의 저서·번역서를 펴낸 조정환 갈무리 출판사 대표도 누구 못지않게 '그 순간'을 기다리는 사람이다.
2014년 제주로 이주해 12년 차에 접어든 조정환 대표는 비상계엄이 선포되기 전부터 윤석열 퇴진 촛불집회에 참가한 이래 지금까지 서울에 머물며 거의 모든 탄핵 관련 집회 현장을 찾고 있다. 윤석열 파면을 보아야만 제주도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각오다. 인문학자의 시선으로 보고 듣고 느낀 탄핵집회 현장의 모습은 어땠을까.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갈무리 출판사로 찾아가 '제주 사람 조정환'을 만났다.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의 차이점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그가 왜 모든 집회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기록하고 분석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물었다.
"저는 문학평론가이기도 합니다만, 요즘은 주로 정치철학, 그중에서도 아우또노미아(이탈리아어로 자율이라는 뜻)를 연구하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세상의 수많은 다중(多衆)이 자본, 국가, 당에서 독립적으로 정치적인 결정을 스스로 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자율주의라고 부릅니다. 한국의 촛불집회는 1970년대에 이탈리아에서 발흥했던 아우또노미아 운동과 매우 유사하고 질적으로도 일치합니다.
2008년 광우병 소고기를 계기로 한 한미FTA에 대한 항의나 2014년 세월호 참사에 대한 항의, 2016년 박근혜 퇴진집회 등이 저의 연구 주제였고, 이번 윤석열 탄핵집회도 연구와 실천을 결합한다는 취지에서 거의 빠짐없이 집회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사실 촛불집회(응원봉집회, 탄핵 찬성집회, 윤석열파면촉구집회 등을 촛불집회로 표기)는 윤석열 정부가 등장한 지 얼마 안 돼 시작됐어요. 그때는 굉장히 소규모였고, 저는 서울에 올 때마다 간간이 들르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다가 명태균 사건(게이트)이 터지고 촛불집회에 모이는 사람들 숫자가 늘어나면서 탄핵이 가까웠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2024년 10월부터 좀 더 밀착해서 집회에 나가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서울에 터를 잡고 민사네(민주주의를 위한 지식인 종교인 네트워크)에 결합하여 본격적으로 참가하기 시작했습니다."
비상계엄을 선포한 12월 3일 이야기부터 들어보자. 조정환 대표도 그날 밤 국회로 달려간 시민 중 한 사람이었다. 역사의 현장이 된 계엄 당일 밤의 국회에서 그는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그날 밤 11시 15분경 지인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비상계엄 선포 사실을 알았습니다. 인터넷 검색으로 상황판단을 해보니 심각했어요. 여의도 국회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12시경 저희 출판사 활동가들과 함께 서교동에서 여의도로 출발했는데, 여의도 입구부터 차가 밀려 20∼30분 지체하다가 안 되겠다 싶어 차에서 내려 걸었습니다. 국회 부근에 도착해 찍은 첫 번째 사진이 1시 9분으로 기록되어 있더군요.
국회 앞 일대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는데, 한 4000∼5000명은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시민들이 국회 정문 앞에서 국회도서관 쪽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계엄해제' '윤석열 체포'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었습니다. 국회 안에도 시민들이 많았는데, 어느 정도인지는 확실히 파악하기 힘들었어요.
저는 군인이 교문을 지키는 대학을 다녔고 대학원을 마칠 무렵 민중미학연구소 사건으로 안기부에 끌려가서 구속당한 바 있고, 월간 <노동해방문학> 사건으로 10년 이상 수배 생활을 한 적도 있습니다. 모두 군사정권 때의 일인데, 군사쿠데타로 군인이 다시 정치의 전면으로 나서는 것이 두렵고, 긴장되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국회 현장으로 달려가서 시민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고 계엄군, 경찰과 맞서다 보니 힘도 생기고 두려움이 사라지면서 마음이 편안해지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