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과 트레킹을 좋아하는 사람이나 그렇지 않더라도 보행에 거부감이 없는 사람들은 제주에 가면 대부분 한라산 주변이나 올레길을 찾는다. 걷기를 목적으로 제주에 간다면 한라산은 꼬박 하루 일정이 필요하지만 올레길은 다양한 코스와 긴 거리로 인해 며칠 일정이나 때로는 몇 주 계획으로 걷는 경우도 많다. 올레길을 걷는 사람들은 알고 보면 각자 사연이 있다. 그런 수많은 사연을 한 단어로 함축하면 순례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것처럼 개개인의 사연을 품은 채 사람들은 걷고 또 걷는다. 걷는 데 의미를 부여하거나, 의미를 찾기 위해 사람들은 걷는다. 그렇게 제주는 걷는 데 특화된 공간인지 모른다.
올레길에 그런 사람들이 다양한 발자국을 남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 오름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풍광 좋은 어승생오름, 금오름, 샛별오름, 다랑쉬오름 정도는 의무적으로 관광 삼아 한 번쯤은 오른다. 오름은 육지에 있는 산처럼 크지도 않고, 그렇다고 올레길처럼 바다를 벗 삼아 걸을 수 있는 풍경도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매력이라곤 도무지 없다.
한눈에 봐도 사발 하나 엎어놓은 조그만 봉우리에 불과하니 트레일과 올레길의 중간 어느 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하지만 하나하나의 오름은 규모도 작고 단순할지 모르지만 오름 2~3개를 연계하면 육지에서 경험할 수 없는 흥미로운 트레일이 될 수 있다. 그 날 것의 트레일은 제주의 속살을 진하게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런 깊은 정취를 느끼기 위해서는 자가용보다 대중교통이나 도보를 이용해야 함은 당연하다. 의외로 제주는 버스 운영 시스템이 잘되어 있어 이동에 그다지 불편하지 않다. 그 공간 속으로 몇 번에 나누어 들어가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