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이 되고자 했던 이무기의 내란이 진압되면서, 용산 대통령 관저 시대는 잠깐의 추억으로 남을 공산이 커졌다. 지난 7일 더불어민주당이 행정수도를 세종시로 이전하는 입법을 추진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이재명 전 대표의 의지가 반영돼있다고 전해진다.
세종시를 포함한 충청권으로 행정수도를 옮기는 구상의 원조는 가까이는 노무현, 멀게는 박정희로 여겨지지만,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 이를 공식 제기한 원조는 김대중이다. 1971년 4·27 대선을 앞둔 시점에 김대중이 여당의 공격을 받은 포인트 중 하나는 바로 행정수도 문제였다.
그해 4월 3일, 김종필 공화당 부총재는 오후 2시(경향신문은 1시)부터 열린 광주서석국민학교 유세 때 "몇 세기만에 한번 날까 말까 한 박정희 후보 같은 지도자를 우리가 일찌기 모셨더라면 일본에게 먹히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한 뒤, 김대중 후보의 공약을 상기시키면서 "우리나라와 같이 중요한 시기에 대통령에게 3, 4년의 연습기간을 줄 수 없다"라고 비판했다. 김대중이 당선되면 대한민국이 그런 시간 낭비를 하게 된다며 김종필이 예시한 것을 다음날 발행된 <조선일보> 1면 중간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는 '김대중 신민당 후보가 행정수도의 대전 천도, 세제의 전면 개혁 등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것은 표를 노리는 어처구니없는 발언'이라고 비난하고 '40개국과의 국교를 90개국으로 확대하고 월남 파병 등으로 강력한 국제적 발언권을 확보한 박 대통령을 계속 지지하여 새로운 번영을 기약하자'고 호소했다."
김대중이 '대전 행정부수도' 주장한 이유는
김대중의 주장은 서울과 더불어 대전을 공동 수도로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는 행정'부(副)수도' 개념을 내세웠다. 김종필이 서석국민학교에서 유세하던 그날 오후 2시 대전역 역전광장에서 유세를 시작한 그는 자신이 예전부터 이런 주장을 했었다고 언급했다. 3일자 <경향신문> 1면 상단의 연설 요지에 따르면, 그는 "대전을 행정부수도로 하겠다는 것은 내가 69년에 대전서 이미 발표한 것으로 안보, 균형 있는 국토개발, 인구분산을 위해서 불가피"하다고 발언했다.
박정희를 대신해 유세를 벌인 김종필은 김대중의 행정수도 이전 공약을 "어처구니없는 발언"으로 깎아내렸다. 이때만 해도 박정희가 이 문제에 별 관심이 없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행정수도 이전론의 원조는 가까이는 노무현, 멀게는 김대중'이라고 고쳐 써야 하는 이유다.
김대중은 충청권을 축으로 국토를 동서 횡단하는 고속도로를 구상했다. 위 연설 요지에 따르면, 그는 "내가 집권하면 대전을 행정부수도로 만들어 1단계로 정부 각부의 외청을 옮기고 2단계로 행정부의 일부를 순차적으로 이전시키겠다"고 한 뒤 금강 입구를 사이에 두고 전북 군산과 마주하는 충남 서천군 장항읍을 거론하며 이렇게 공약했다.
"장항을 관문으로 대전~경북~강원도를 잇는 횡단고속도로를 급속히 건설, 전국을 반일(半日)행정 및 반일생활권으로 묶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