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보건복지부 주관 법정기념일로 지정된 이 날을 한국은 국가적 차원에서 '장애인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깊게 하고 장애인의 재활 의욕을 높이는' 날로 기념한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다른 57개의 법정기념일들이 그러하듯 이날 또한 이익집단이며 가치집단 간 치열한 논쟁과 설득을 거쳐서 오늘의 자리에 올라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러하듯, 표면 아래를 꿰뚫어 볼 줄 아는 이만이 세상 무엇도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에 공감하는 법이다.
장애인의 날이 국가가 주관하는 기념일이 된 건 1981년에 이르러서였다. 군사반란으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이 정식으로 민간에서 챙기던 '재활의 날'을 장애인 전반에 대한 기념일로 지정해 관리하기 시작한 덕분이다.
물론 전두환과 신군부가 장애에 특별한 관심과 인식이 있어서 이 날을 챙긴 건 아니다. 1981년은 UN(United Nations·국제연합)이 '장애인의 날'로 지정한 해다. 한국 현대사 가운데 정통성이 가장 취약한 집권세력으로 광주에서 저지른 학살극으로 국제적 비판 앞에 선 전두환 정권으로선 국제적 비판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방안에 혈안이 돼 있던 터였다. 이때만 해도 한국이 UN 정식 가입국으로 인정받지도 못한 형편이고 보면 UN이 추진하는 국제적 사업에 발맞출 필요가 절실하기도 했다.
4월 20일은 온갖 역경을 뚫고 한국이 독자적으로 기념하는 장애인의 날이 됐다. 이날만큼은 정부 차원에서 장애인과 그 가족을 사회 구성원으로 바라보고 그 고충을 깊이 이해하기 위한 작업을 충실히 수행한다. 등록장애인만 264만 명(2023년 기준)으로, 전체 국민 중 5%가 넘는 이 사회에서 장애를 대하는 태도가 그리 성숙하지 못했단 건 뼈아픈 한국의 현실이라 해도 좋겠다.
한국인이 유달리 장애에 대한 인식이 없단 것, 또 장애인들이 사회적으로 고립되기 쉽다는 것은 각종 통계로도 입증된다. 보건복지부 장애인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장애인은 매년 외출횟수는 물론, 소득 및 지출, 우울감, 사회적 고립감 등 거의 모든 항목에서 비장애인보다 좋지 않은 결과를 받아든다.
가장 큰 문제는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완전히 다른 누구로 타자화되고 고정관념에 맞춰 대상화된다는 점이다. 부족한 관계와 노출 속에서 장애인이 타자화, 대상화되면 사회는 장애를 이해하고 성숙하게 관계 맺을 기회를 상실하기 쉽다. 남은 건 악순환뿐이다.
9년 만에 등장한 장애인이 의미하는 것
인구 5%, 우리 국민 20명 중 1명은 장애인이다. 국제 평균치인 15%에 현격히 미치지 못하는 수치와 장애인 등록이 어렵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나오는 실태를 고려하면 실제 장애인은 그보다 많을 수도 있겠다. 가장 많은 지체장애인을 비롯해 청각과 시각, 뇌병변, 지적장애인 등 다양한 장애형태가 우리 주변엔 얼마 노출되지 않고 있다.
민간 공동체가 급속히 파괴되고 파편화되는 현실 가운데, 또 각급 학교에서도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섞여 교육받기 어려운 한국의 상황에서 장애인을 만나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는 얼마 되지 않는다. 나는 버릇처럼 한국 대중매체와 영화에서 장애인을 찾아보곤 하는데, 5%는 무슨, 천에 하나나 등장하면 다행일 정도다.
앞서 '씨네만세'에서 소개했듯, 미국에서 손꼽는 성공한 드라마 <워킹 데드>는 그 여정을 시작하고 무려 9년, 아홉 번째 시즌 만에 장애인을 전면에 등장시킨다. 조연급 캐릭터인 코니(로런 리들로프 분)가 바로 그녀로, 시즌9 에피소드5에서 주디스(케일리 플레밍 분)의 눈에 띄어 주인공 무리에 합류하는 것이다(관련기사: 소수자 강조한 드라마, 장애는 어디에? https://omn.kr/2d0rv ).
코니를 연기한 배우 로런 리들로프는 실제 청각장애인 배우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청각장애인으로 언어가 중요한 표현수단인 배우로 연기하는 데 커다란 장애를 가진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현실의 장애보다 더한 게 아니다. 현실에서도 꼭 그만큼의 장애를 가진 채로 살아가고 있는 때문이다. 살아가고 있다는 건 연기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등장만으론 부족하다, 어떻게 묘사되는가
한국 기준으로 청각장애인은 전체 등록장애인의 16%를 넘긴다. 숫자로는 43만 명이 넘는다. WHO(세계보건기구) 통계는 수화와 필담 없이 대화가 어려운 중증 이상 난청을 겪는 청각장애인이 4억 명을 넘는다고 확인한다. 인구수 대비 5% 수준이다. 등장인물 20명 중 1명은 청각장애를 가졌어야 한다. 적어도 회상장면에서라도. 그러나 <워킹 데드>를 보는 이들은 코니가 등장하는 그 순간에야 비로소 알아차린다. 우리가 청각장애를 가진 캐릭터를 드라마며 영화에서 거의 보지 못했단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