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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세 작가가 헌재 앞 날밤 샌 사연…"광주가 제 예술의 근원"
2025-04-22 18:09:39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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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20일) 저녁 4시부터 광주광역시 서구에 있는 까페 싸목싸목 다목적홀에서는 아주 특별한 강연이 있었다.

연사는 김봉준 작가로, '민주화운동과 나의 민중미술-창작을 징검다리로 50년을 건너다-'라는 주제의 강연이었다. 저녁 4시 강연에 맞춰 서울에서 KTX를 타고 광주송정리역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까페 싸목싸목다목적홀'을 가달라고 하니 택시 운전사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주소를 알려달란다. 새내기였나보다. 그 유명한 까페 싸목싸목 다목적홀을 모르다니 말이다.

이에 앞서 2주 전쯤 광주에서 시민사회운동을 열심히 하는 (사)한국사회조사연구소장 김순흥 교수로부터 김봉준 작가의 강연 홍보물을 카톡으로 받았다. 덧붙이는 말에 "우리나라 민중미술 특히 걸개그림과 판화의 선구자이신 김봉준 선생이 직접 자신이 문예운동 50년을 정리하는 시간입니다.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릴 수 있으니 미리미리 사전 예약을 하셔야 합니다"라는 말을 듣고 일찌감치 사전 예약과 동시에 KTX를 예매했다.

강연 시간은 저녁 4시부터 2시간이 잡혀있어 귀경 열차는 넉넉하게 8시 50분 차를 예매하고 강연장을 찾았다. 강연은 4시에 시작되었고 쉬는 시간 별로 없이 4시간이 훌쩍 지났으나 아직도 끝이 안 보였다. 하는 수 없이 마무리를 못 보고 귀경 열차를 타러 역전으로 뛰었다. 집에 도착하니 자정이 훌쩍 지났다.


올라오는 열차 안에서 나는 메모장을 넘겨보며, 4시간 동안 열변을 토하던 김봉준 작가를 떠 올렸다. '창작의 시간 50년', 새로운 장르인 민중미술을 선도해 온 작가에게 2시간의 강연 시간을 예상한 것은 애당초 부족하기 짝이 없는 시간이었다. 다목적홀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마치 리트머스 시험지가 된 듯 김봉준 작가가 살아낸 시대와 그 거친 시대를 온몸으로 부딪히며 예술혼을 불태웠던 작가의 삶에 빠져들어 갔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인문학을 해온 사람으로 미술의 세계는 잘 모른다. 더구나 '민중미술'이라든가 미술을 접목한 '문예운동'과 같은 말은 친숙하지 않다. 특히 추상의 세계를 그린 미술에 대해서는 더구나 문외한이고 흥미도 없다. 다시 말하자면 작가가 설명을 해주지 않으면 도저히 무엇을 나타내는지 모르는 작품들을 구태여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런 나의 미술에 대한 평소 생각을 일시에 바꾸어 놓은 강연이 김봉준 작가의 '민주화운동과 나의 민중미술' 강연이었다.




강연 중간중간에 보여준 시대별 특징이 고스란히 배어난 그의 작품들은 한눈에 보아도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척 알 수 있어 좋았다. 어디에 방점이 있는지 어린아이라도 금세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특히 민중들의 다양한 주제를 판화로 나타낸 작품이 주는 생동감과 강렬한 메시지는 여과 없이 그대로 가슴에 와 꽂혔다. 감동 그 자체다. 왜 이런 그림들에 대해 무관심했을까? 귀경길 열차 안에서 '4시간 내내 피피티'로 보여준 김 작가의 작품들은 새로 한 장 한 장씩 슬라이드 돌리듯 돌아갔다.

팔을 높게 치든 역동적인 노동자들을 그린 작품에서는 나도 모르게 주먹이 쥐어졌으며, 둥그렇게 논바닥에 앉아 새참을 먹는 작품에서는 유년시절 외갓집에서 보았던 정겨운 농촌 풍경이 떠 올랐다.

또 겨레의 통일을 염원하는 민중들의 모습에서는 어느새 나도 그들의 손을 잡고 있었으며, '고려인문화의날'을 그린 작품 앞에서는 나도 그들과 함께 쓰라린 역사의 현장에 서 있는 느낌을 받았다. 그 느낌을 강렬했으며 인상 깊었다. 초원의 풀을 실컷 뜯어 먹은 소가 되새김질을 하듯, 나는 귀경길 열차 안에서 김봉준 작가의 작품들을 하나하나 되새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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