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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책 읽고 막노동판에 뛰어들었다니... 걱정된다
2025-04-22 20:05:13
나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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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효자다." 훗날 분명히 땅을 치며 후회할 게 자명하다. 그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불효하고 있다. 갖은 변명과 핑계를 갖다 붙여보지만 면죄부를 받을 근거가 없다.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뒤늦게 노동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 숨 쉴 겨를 빼곤 하루하루가 숨 가쁘게 지나가고 있다.

새벽 5시 기상 이후 밤늦게까지 노동 현장에서 일당을 벌고 집에 오면 쭉 뻗는다. 기력이 없을 만큼 녹초가 된 상태에서 저녁이 있는 삶은 없다. 그나마 위로해 주는 건 소주와 담배, 커피뿐이다. 모두가 타인의 인생처럼 쓴맛만 나는 것들이니 애달프다.

홀로 남겨진 어머님은 지척에 사신다. 자동차로 20분 거리. 조석으로 안부를 물어도 될 정도로 가깝다. 하지만 2주에 한 번꼴밖에 찾아뵙지 못한다. 그보다도 더 심각한 건 전화조차도 거의 안 한다는 사실이다. 건강을 묻고 일상을 답하고, 다음을 기약하는 반복된 질의응답이 싫어 의도적으로 회피한다. 핑곗거리를 찾고, 그 핑계에 덕지덕지 도망갈 궁리만 갖다 붙이니 대면할 일이 적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어머님 얼굴을 떠올리고 안녕을 염려하건만 그저 마음뿐이다.

아버님을 떠나보낸 지 벌써 1년 반이 돼간다. 평생을 노동자로 사시다가 가신 당신을 떠올릴 때마다 회한과 반성이 동반된다. 아버지의 노동은 아버지 스스로 끝내지 못했고, 돌아가시고 나서야 노동을 끝내셨다. 그리고 유업을 이어받듯 나의 노동은 쉰 살이 넘어 시작됐다.

땀에 절어 쉰내 나던 그분의 체취, 일 년에 한두 번 빼고는 흙먼지 가득했던 작업복, 삶의 즐거움이라곤 어느 구석에도 보이지 않던 지친 기색, 고기 살 돈이 아까워 정육점 비계를 끊어오시던 가난함, 살 붙을 겨를이 없어 뼈마디가 푸르게 솟았던 가여운 몸, 푼돈 모으기도 바빠 평생 용돈 한번 안 주신 초라한 주머니, 몸이 아파 절룩거리면서도 새벽 일터로 나가던 비루먹을 시간들···.

아버지에 대한 안타까운 원망도 아직 남아있다. 당신은 옛날 사람 정서대로 철저하게, 사무치게 장남주의자였다. 차남인 나와 누이에 대한 각별한 정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살면서 칭찬 한번 받은 일 없고 용돈조차 받아본 일이 없다. 나를 향해 따뜻한 웃음을 지어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어렸을 때부터 학창 시절까지 노동력의 일부분을 담당하는 자식일 뿐이었다.

나의 노동을 못마땅해하시는 어머니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아버지는 그냥 아버지였다. 엄했던 기억, 다정하지 않았던 기억, 초라했던 기억밖엔 없다. 그래서인지 어머니에 대한 생각이 더 각별하고 애틋하다. 언제나 자식 편에서 서서, 덜 일하고 더 공부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차의 핑계를 대도 어머님에 대한 불효를 감쇄시키진 못한다. 일주일에 하루를 빼고는 현장에 있다 보니 하루라도 온전히 쉬고 싶어 어머니를 찾지 않는다. 이기적인 자식이다. 아직도 어머니는 찻길을 조심하라고 당부하고, 반찬 하나라도 입에 넣어주려고 애쓰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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