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이 대사에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금명(아이유)과 영범(이준영)의 상견례 장면에서 장래 시어머니가 될 부용(강명주)이 국 하나 제대로 못 뜬다고 금명을 타박할 때, 애순(문소리)이 한 말이다.
학창 시절 나의 엄마도 내게 설거지 한번 제대로 시킨 적이 없다. 그럴 시간에 가서 공부나 하라고 손사래를 쳤다. 내가 받은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자란 탓에 결혼 후 절벽 앞에 선 듯 까마득한 심정이 되어버렸던 때가 있었다. 시댁에서 설거지를 하면서, 아이를 낳은 후 세 끼를 짓고 청소하고 집안일 하느라 하루가 저무는 경험을 하면서. 내 안의 어떤 일부가 발끈하며 솟아올랐다 무너져 내렸다.
그런데도 나는 한동안 엄마를 원망했다. 엄마가 손에 물 묻히지 말라며 책상 앞으로 보냈던 딸이 전업주부가 되어 애만 보고 있을 때, 산후우울증으로 팍팍해졌을 때, 엄마는 기어이 내 속을 후벼파는 말을 던졌기 때문이다. "네가 계속 일을 했으면..."으로 시작해, "네가 잘한 게 뭐가 있니?"로 끝나는 말이었다.
그때는 엄마의 말이 너무 쨍해 그것밖에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엄마가 밉고 서러웠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내 안의 무언가가 달라졌다. <폭싹 속았수다> 같은 드라마 덕분에 엄마가 내게 했던 모진 말 뒤로 미처 꺼내지 못한 말이 있다는 걸 헤아려 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너를 얼마나 귀하게 아껴 키웠는데, 너는 더 푸지게 살길 바랐는데, 같은 말.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언어는 평생 배우고 연습해야 하는 일임을 깨우친 것도 영향을 주었다. 언어란 생각을 지배해 세계를 바라보는 틀을 짓고 삶을 굴리는 바퀴가 된다. 매일 무수한 말을 주고받지만 정작 하고 싶은 말은 속으로 삼키고 의도와 달리 상대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는 건 더 나은 언어를 배우고 연습하지 못해서인지 모른다.
내가 혹은 나의 엄마가 미처 꺼내놓지 못했던 말을 드라마로 듣다 이 책이 떠올랐다. 신유진 작가가 자신과 엄마와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적어낸 <사랑을 연습한 시간>(오후의 소묘, 2024년 11월 발간)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유사한 경험을 했다. 언어로 옮길 수 없었던 엄마에 대한 모순적 감정과 여성으로 살아가는 내 안의 복잡함도 언어의 옷을 입고 세상으로 걸어 나올 수 있음을 책에서 보았다.
엄마의 시간을 다시 적어 내려가다
이야기는 스물셋에 아기를 낳은 여자가 머물던 건넌방에서 시작된다. 아기를 안고 불안과 두려움에 떨면서도 아기를 지키기로 결심했던 젊은 여자는 식구들이 식탁에 앉아 밥을 먹을 때 서서 밥을 삼켰고, 집안의 모든 곳이 따뜻할 때 자신이 머무는 방만은 서늘하게 두었다. 그 집에 여자만의 공간이라고는 네 단짜리 책장밖에 없었다. 더 시간이 지나서는 가족을 먹이기 위해 시장에서 집으로 맨발로 뛰어다니느라 여자의 발은 누렇게 변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