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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소설 장준하 9] 일본군 지원자의 두부류
2025-04-27 20:07:40
김삼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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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12월 8일 진주만을 기습, 태평양전쟁을 도발한 일제는 1943년 10월 26일 이른바 <조선인학도 육군특별 지원병제도>를 공포하였다. 학도지원병은 표면으로는 자의에 의한 지원이라 하였으나 실제로는 강제동원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일제는 태평양전쟁이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점점 위기의 국면에 접어들자 조선청년들을 총알받이로 전쟁에 끌어들이고자 학도병 제도를 만들고, 해당 학교와 가족에게 '지원'을 독려하였다. 또한 총독부 경무국은 사회적으로 명망이 높은 김성수·장덕수·최남선·이광수 등을 앞세워 기관지 <매일신보>에 지원하는 글을 쓰게 하거나 지방을 순회하면서 강연을 하도록 하였다.

조선인 학병 해당자 중에는 이에 저항하여 집단행동을 하거나, 술을 마시고 경찰관서를 파괴하는 경우도 벌어졌다. 또한 만주나 깊은 산속, 탄광으로 들어가 학병을 거부한 사례도 없지 않았다.

1944년 1월 19일~20일에 학병 적격자 7,200여 명 가운데 한국내 학생 959명(적격자 1,000명), 귀성중인 일본 유학생 1,431명(적격자1,529명), 일본에 남아있는 유학생 719명(적격자 1,524명), 취업중인 졸업생(적격자 약 700명) 등 총 4,358명이 전국 각지에서 강제 입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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