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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 빼앗기거나 공존하거나... AI 활용에 창작자들이 답했다
2025-04-27 13:48:03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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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에 대해 생각한다. 인간은 과연 존엄한가를.

고백하자면 나는 이제껏 인간의 존엄이 상당부분은 능력에 터 잡고 있다 여겼다. 인간은 무질서한 세상에 균형을 세우고, 가치를 이룩하며,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는 존재라고, 인류가 걸어온 길과 앞으로 걸어갈 길이 인간의 존엄을 입증하게 되리라 믿었다. 위대한 작품을 쓰고 법과 제도를 닦아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인간의 역량이 곧 존엄을 증명한다고 생각했다.

이제 나는 내가 지난 시간 믿어온 생각을 수정한다. 인간의 역량은 존엄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아니, 어쩌면 존엄이란 말부터가 틀려먹은 것일지 모르겠다. 오로지 인간만이 가진 역량도, 가치도, 의미도 없는 건 아닌가. 초거대언어모델(LLM), 이미지변환모델(Text-to-Image) 등 각종 AI 서비스가 상용화된 지 수 년 만에 인간이 창작하는 여러 분과가 그에 점령됐다. 나는 내가 쓰는 글보다 얼마 못하지 않은 글이 불과 몇 초 만에 주루룩 작성되는 광경을 매순간 목도한다. 글에 삶을 걸겠다고 다짐한 내가, 그토록 애정한 영역에서 어쩌면 다시는 AI를 이겨낼 글을 써내지 못할 시간이 꽤나 빨리 닥칠 수 있단 걸 실감한다. AI는 도스토예프스키보다, 볼테르보다, 셰익스피어보다 나은 글을 쓰고야 말 것이다. 그렇다면 AI는 인간보다 존엄할까. 나는 이제 존엄이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AI가 쏟아내는 결과물, 인간을 위협한다

얼마 전, 저 에르베 르 텔리에와 AI가 소설쓰기 대결을 벌였단 소식이 프랑스 지성계, 전 세계 글 쓰는 이들을 놀라게 했다. 르 텔리에는 승리했으나 인류는 우리 가운데 대부분이라 할 만한 이들이 이미 AI보다 못하단 사실을 확인했다. 문학적 소양이 있는 통제자가 잘 정리된 프롬프트로 활용하는 AI는 현재 활동하는 작가 중 상당수마저 패퇴시키기 충분하다. 더 나은 작품을 쓴 건 세계 최고수준의 작가 르 텔리에지, 인간이 아니다.

'누벨옵스(Le Nouvel Obs)'가 주관한 이 대결이 한창이던 기간, 한국사회는 온통 챗GPT와 DALL·E를 통해 저와 제 지인들의 사진을 이미지로 생성하는 유행에 휩쓸렸다. 유행의 민족답게 세계 어느 나라, 어느 문화권보다도 열렬히 새로운 기술을 소비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지브리스튜디오 작화풍이 유독 큰 인기를 누렸단 건 각별히 흥미로운 대목이다.

미술은 여러 창작, 또 예술 분과 가운데서 가장 격렬한 변화와 마주했다. 미술에서 파생된 제 분야 가운데 AI로 인한 변화를 겪지 않는 곳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각종 공모전은 물론이고, 포스터와 일러스트 디자인, 작화, 그림책, 웹툰, 애니메이션 등이 하나하나 그러하다. AI가 단 몇 초 만에 그림을 생성할 수 있다면 애니를 만드는 일의 의미가 근본적으로 변화할 밖에 없다. 한 컷 한 컷에 온 정성을 기울이던 지난 시대 애니메이터들이 이 광경을 본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관련기사: '씨네만세' 1000회 쓰며 '이 영화' 떠올렸습니다, 이유는요).

돌아보면 온통 오늘의 유행을 얄팍하게 소비하고 산업적으로 분석하는 기사들뿐이다. 현장의 인간, 애니메이터들의 목소리를 깊이 있게 담아낸 보도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한때나마 언론계에 몸담았던 영화평론가로서 몹시 불쾌하게 다가온다. 그와 같은 불만을 직접적으로 내게 전해온 문화예술계 관계자 또한 적지 않았다. 그리하여 나는 여기 독자들에게 현장의 목소리를 전하고자 한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애니메이션 산업 관계자들에게 오늘의 변화와 관련한 질문을 던졌다. 누군가는 이들에게 질문해야 한다고, 또 누군가는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여겨서다. 과연 그럴 가치가 있는 답변들이 돌아왔다. 모두 17명의 애니메이션 업계 종사자들이 제안에 응하여 답변을 보내왔다.


애니메이션 업계 관계자 17명에게 묻다

우선 지브리 프사 열풍과 대면해 드는 감상을 물었다. 놀라움과 감탄, 불안과 혐오, 공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목소리가 나왔다. 긍정과 부정이 뒤섞인 가운데서 어떻게든 시대의 흐름에 따라가야 한다는 위기감과 조급함이 물씬 묻어났다.

"디즈니도 픽사도 아니고 어째서 지브리일까. 아주 세련되지도 않고 못생긴 것도 아닌 친근한 이미지에 누르스름한 웜톤이 자아내는 향수를, 가상의 추억을 소비하는 게 아닐까. 기계로 뚝딱 만들었지만 손으로 그린 듯하다고 느껴지면 거부감도 없구나. 지브리가 수십 년간 쌓은 정감의 인지도를 나는 이 시대에 새로 구축할 수는 있을까. 범람하는 이미지와 낭비되는 에너지에 대한 경각심이 보다 공유되는 세상이었으면 한다." -이경화, 서울인디애니페스트 프로그래머, 단편 애니 <쿠피키피도시락>(2022) 감독

"최근 유행하는 AI로 이미지변환하기 서비스 같은 건 원작자의 동의가 없다면 작가에 대한 조리돌림과 같다고 본다. 저작권에 대한 기준과 제한이 분명히 존재해야한다. 물론 사람들이 쉽게 그런 그림을 얻기를 욕망한다는 건 변할 수 없는 상수다. 그렇다면 내가 바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성환, <아> <클리너> <우리> <기억으로 만든 집: 이향정> 감독, 스튜디오 쉘터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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