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출산은 깊고 청정한 숲과 남생이가 사는 맑은 계곡을 품은, 영암군의 보물 1호입니다. 숲속 고요한 산사에서 지난 10월 12일 '숲숲영화제'가 시작됐습니다. 영암군에서 처음 열리는 환경영화제 소식에 며칠째 동네가 웅성웅성하더니, 개막작인 <내일> 상영회엔 남녀노소 관객들이 북적였어요. 영화제를 주최한 숲숲협동조합(아래 숲숲)이 <내일>을 개막작으로 고른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기후변화가 월출산 남생이의 생태‧환경뿐 아니라 영암 주민의 생계인 농업‧어업과 밀접하고, 작년에 문을 연 영암태양광발전소와도 관련 깊은 일상의 문제임을 알려주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올해 2월 문을 연 숲숲은 서울살이를 하던 영암 출신 청년 세 명이 고향에 돌아와 각자 생업을 하다 함께 만든 법인이에요. 세 청년 모두 N잡러인데, 토목공학을 전공한 하준호 숲숲 부이사장은 건축업을 하면서 환경단체와 청년협의체 활동을 하고, 조경학을 전공한 정서진 이사장은 5천 평 규모의 생태정원을 가꾸며 환경 교육‧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또 다른 멤버인 김여송씨는 에코뮤지엄을 표방하는 영암곤충박물관의 부관장입니다.
그러니까 숲숲은, 고향의 아름다운 자연을 지키고 이곳을 살아있는 환경교육‧체험의 장으로 만들려는 세 청년의 야심 찬 첫발인 셈입니다. 11월 2일까지 계속되는 숲숲영화제를 위해 '영암의 등대지기'가 되었다는 하준호 부이사장을 만났습니다.
- 왜 '영암의 등대지기'인가요?
"매일 야근을 하니까 숲숲 사무실이 한밤중까지 환하잖아요. 근처가 논밭이고 숲이라 밤이면 캄캄한데, 2층에 있는 숲숲 사무실만 환하니까 정말 등대 같아요. 게임회사들을 '판교의 등대'라고 부르던 게 생각나서 그렇게 표현한 건데, 저는 자발적인 야근이라는 게 좀 다르네요."
- 토목공학을 전공하고 서울서 큰 건설회사에 취직도 했는데 고향으로 돌아왔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대학 다닐 때 건설회사 인턴을 하다가 적성에 안 맞는 일이라는 걸 알았어요. 전국의 건설현장을 떠돌아다니며 살아야 한다는 게 막막하더라고요. 저는 사람들과 함께 뭔가를 도모하고 새로운 일을 만들어내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래도 전공을 살려서 대기업에 취직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건설회사에 입사했는데 하필 첫 발령지가 동계올림픽 개최를 앞둔 평창이었어요.
마침 평창올림픽 자원봉사자를 모집하더라고요. 회사 안 가고 올림픽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냥 마음만 잡아서 될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았죠. 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평창 사무실로 출근하는 대신 올림픽 자원봉사 지원서를 냈고, 패럴림픽까지 두 달 남짓 정말 즐겁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어요."
대기업 사표 내고 돌아온 고향… '미친놈'이 되다
- 부모님이 나무라지 않으시던가요.
"미친놈이라고 하셨죠, 하하. 서진이(정서진 이사장, ㈜새실 대표)는 부모님 도움 없이 이렇게 반듯하게 사업을 잘하는데도 고향 어르신들이 아직도 '서울 가서 성공해야지 여기서 뭐 하느냐'고 잔소리를 하신다는데, 저는 대기업을 그만두고 별 계획 없이 돌아왔으니 얼마나 눈총받고 푸대접을 받았겠어요. (웃음)
대도시에 사는 청년은 무슨 일을 하든 성공한 거고 고향에 머물며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성과를 거둬도 패배자로 여기는 인식이 빨리 개선돼야 더 많은 청년들이 지역살이를 선택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집에 돌아온 후 지역 건축회사에서 일하며 청년협의체와 환경단체 활동을 했는데, 가족이나 친척들은 저를 이해하지 못했어요. 다행히 서진이도 있고 다른 친구들도 있어서 마음 터 놓고 이야기하며 새로운 일을 도모할 수 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