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 채>는 집 한 채를 얻기 위해 두 가족이 신혼부부 특별공급 아파트를 분양받으려는 과정을 담았다. 한국에서 갖기 힘든 아파트를 소재로 가족의 의미를 묻는다. 집 한 채를 위한 처절한 몸부림은 하나의 목적을 위해 맺은 관계의 복잡한 관계를 훑는다.
지적 장애가 있는 여성과 어린 딸을 키우는 남성이 만나 투박하지만 서로에게 스며드는 존재가 되어간다. 결국에는 가족이 되지 않을 것 같았던 남이 피를 나눈 가족 보다 끈끈해지는 가족 혹은 연대의 존재가 되어간다.
영화는 캐릭터의 전사, 스토리의 결말, 의문이 해소되지 않고 편집된 부분이 많아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사실적이다. 캐주얼 시네마 방식 채택해 미니멀한 스태프와 유연한 촬영 방식으로 찍은 영화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 비전 부분 최고상인 LG올레드 비전상과 시민평론가상을 받았다.
러닝타임 내내 지적장애를 가진 여성과 아빠, 집 없이 모텔을 전전하며 지낸 딸 고은이 눈에 밟힌다. 죽기 전에 작은 집이라도 남겨주고 싶은 아빠는 불법인 줄 알지만 브로커를 통해 딸이 있는 도경과 위장결혼을 시킨다. 아빠가 '이제부터 끝이라고 하기 전까지 소꿉놀이하는 거야'라는 말을 믿는 고은은 이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빠를 고분고분 따른다.
반짝이는 얼굴을 한 신예 이수정을 13일 강남의 카페에서 만났다. 생의 첫 인터뷰라 떨리는 마음이라며 만남의 의미를 부여했다. 첫 만남, 첫사랑, 첫 출근 등 누군가의 처음에 동반하는 기분이 오랜만이라 함께 들떴다. 이어 흔한 이름을 강조하고 싶은 마음으로 만들었다며 "마음을 전하는 배우가 되고 싶은 보석보다 빛나는 이수정입니다"라고 소개했다. 원석을 만난 기분이 들었다. 단아한 모습과는 반대로 때로는 말괄량이처럼, 수줍은 소녀처럼 다양한 얼굴을 드러냈다. 다음은 배우 이수정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우리 영화는 따스한 온도"
- 지적장애가 있는 '고은'은 말, 표정이 잘 없어 감정 상태를 알기 힘들다.
"아빠랑 여기저기 떠돌이 생활을 오래 해 누울 수 있는 곳은 집이라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생각 없어 보이지만 장면마다 의미를 부여하고 특성을 장면마다 나눴다. 가끔은 의사가 뚜렷해 보이기도 하고, 애가 타 보이기도 했으며, 어른같이 행동하려는 모습도 있다. 행동의 연결성을 두면 오히려 이상해질 것 같았다. 그냥 고은이니까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빠랑 있을 때는 어리광 피우는 딸처럼, 사랑(도경의 딸)이랑 있을 때는 엄마처럼, 도경이랑 있을 때는 남편이라는 존재보다 현재를 함께 하는 동지라는 생각이 들도록 분절했다."
- 한국 영화에서 지적 장애를 가진 캐릭터가 많지 않다. 캐릭터 준비 과정이 쉽지 않았겠다.
"드라마 <날아라 개천용> 때 3차 오디션 만에 끝에 지적 장애 임산부를 연기한 적 있다. 그때 관련 다큐멘터리를 찾아보고 분석했던 게 도움 됐다. 지적 장애를 가진 분들의 특성, 버릇을 저것으로 소화해 보려고 했다. 고은의 뇌를 그려 보면서 '세상에 없는 고은을 만들어 달라'는 주문을 누구보다도 잘 해내고 싶었다. 다행히 리허설을 많이 했기 때문에 막히는 부분은 무조건 감독님부터 찾았다. 모르는 건 물어봐야 했다. 오죽하면 현장에서 '근데요.. 감독님'으로 통했을까. (웃음)"
- 초반 고은이 옷 가게에서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사달라고 조르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아빠는 그냥 가자고 하는데 고은은 버틴다. 깎아 달라는 뉘앙스인데 주인에게 은근히 강요하는 듯 보인다. 문호(임후성)가 고은을 키우며도 종종 장애를 앞세워 경제적 이득을 얻었을 거란 게 언뜻 느껴진다.
"고은이 정확하게 인지는 못했겠지만 그것도 놀이의 일종으로 받아들인 거다. 둘이 그동안 비슷한 호흡을 맞춘 경험이 있다는 설정이다. 고은이 마음에 드는 옷을 고르고 아빠는 딸을 잃어버렸다가 찾은 듯 연기하는 거다. 옷 가게에서 마지못해 사주는 상황도 사실 계산된 연기다. 소꿉놀이, 경찰놀이 같은 '놀이'의 일환으로 받아들여도 된다."
- 영화는 많은 서사가 생략되어 있어 보고 나면 궁금증이 생긴다. 관객이 괄호와 괄호 사이의 빈칸을 채워가야 하는 능동적인 영화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도 여운이 이어지고 토론의 장이 생기도록 하자는 게 우리 영화의 목표였다. 영화제 GV 때 '우리 영화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따스한 온도의 영화다'라고 무대 인사 때 했던 이야기가 기억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