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좋아하는 시에 '타인의 길 위에서 사는 것이 죽는 것이고, 자신의 길 위에서 죽는 것은 사는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저는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고 싶고, 나의 모든 걸음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내가 좋은 에너지를 가져야 남들에게 좋은 에너지를 줄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살고 싶다."
지난 25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아래 <유퀴즈>)에 배우 이민호가 출연해 자신의 연기인생과 철학을 이야기했다. 이민호는 신작 <별들에게 물어봐>에서 공효진과 함께 우주를 배경으로 한 로맨스 연기를 펼친다.
16년 만의 예능 출연이자 토크쇼 첫 출연이라는 이민호는 "과거 <무한도전>같은 예능들은 너무 치열해 보였다. 그 뒤로는 힐링 프로그램이 인기가 있었는데, 그때는 제 개인적 삶도 힐링하기 바빴다"라고 했다.
역대 예능 트렌드까지 진지하게 분석한 이민호는 "<유퀴즈>는 그냥 차 한잔 하러 온 느낌이라서 편안하게 나올 수 있겠다 싶었다"며 미소를 지었다.
이민호가 300대 1 경쟁률 뚫고 구준표 배역 따낸 비결
어린 시절 축구선수를 꿈꾸던 이민호는 부상으로 축구를 포기한 이후 한동안 진로를 고민하다가 고2 때 배우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2006년 EBS 청소년 드라마 <비밀의 교정>으로 데뷔했던 그는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아 절친 정일우와 여행을 가던 중 음주운전 차량에 큰 교통사고를 당하는 불운을 겪어야 했다. 이 사고로 이민호는 무려 1년 가까이 병상에서 누워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
함께 사고를 당했던 친구 정일우가 먼저 회복한 이후 활발한 연기활동을 펼치며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며 이민호는 당시 묘한 감정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친구가 잘되니까 기분이 좋지만 나는 뭐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감정이 드는 제 자신도 싫었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그러나 교통사고 회복 이후 2009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출세작 <꽃보다 남자>를 만나게 되면서 이민호의 연기인생은 큰 전환점을 맞이한다. 동명의 만화 원작을 드라마화한 작품은 최고시청률 32.9%를 기록하는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다. 특히 주인공 구준표를 연기한 이민호는 만화를 그대로 찢고나온 것 같은 엄청난 싱크로율을 선보이며 신드롬을 일으켰다.
당시 이민호는 300대 1의 엄청난 오디션 경쟁률을 뚫고 구준표 배역을 따냈다. 그는 "그때 형편도, 제 상황도 그렇고 '이건 돼야만 한다'는 생각에 굉장히 간절했다"고 회상했다. 아예 처음 오디션을 보러갈 때부터 이민호는 놀랍게도 원작 주인공의 소라빵 머리 헤어스타일을 그대로 구현한 상태로 참가했다고.
이민호는 "이왕 할 거면 처음부터 주인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으니까"라며 웃으면서도 "사실 저도 그 머리를 하기 싫었다. 어린 나이에 멋있어보이는 머리는 아니었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작품이 잘됐으니까 다행이지만, 그 머리를 하고 잘 안됐으면 제 미래가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고 복잡했던 감정을 전했다.
드라마속 초현실적인 재벌 2세 구준표를 연기하면서 일상 속 현실의 자신과 괴리감을 느꼈던 순간도 많았다고. 이민호는 "극중 캐릭터는 재벌인데 정작 저는 그때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다. 홀로 가장의 역할을 하고 있던 엄마가 각종 고지서를 보고 있던 뒷모습이 너무 작고 쓸쓸해보였다"고 떠올리며 "어린 나이에 내가 빨리 가장 역할을 해서 엄마의 짐을 덜어드리고 싶었다. 저에게 연기는 생업이었다"고 말했다.
누구보다 연기에 절박했던 이민호는 <꽃보다 남자> 촬영 당시 감독이 한두 번 만에 OK 사인을 내도 자신의 연기에 만족하지 못해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홀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고. 그는 "몇 번 더 시켜주면 더 잘할 수 있는데. 빠르게 찍으면 불안한 거다. 콘디대로 한다는 건 가장 기본적인 거니까, 남은 시간에 뭘 더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스타일"이라며 매 순간 연기에 진심이었던 시절을 돌아봤다.
이민호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꽃보다 남자>의 인기로 '구준표 신드롬'이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이민호는 그해 백상예술대상에서 TV부문 신인남자연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처음으로 참석한 시상식이었던 백상예술대상에서는 너무 긴장해 레드카펫을 걷다가 꽈당 넘어지며 수많은 흑역사 짤을 생산해낸 에피소드를 떠올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