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을 가슴에 품어 본 적 있는가? 찰랑찰랑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그런 하늘 말이다. 한없이 높아만 보이는 무한의 창공은, 뭔지 모를 넉넉함마저 안겨주지 않던가.
땅에도 그런 빛깔이 흐른다면? 휘감아 흐르는 맑은 물이 수없이 머리를 돌에 부딪는다. 얼마나 부딪쳤으면 퍼런 멍이 들고 만다. 절정의 순진무구다. 그런 빛깔로 물든 맑음이 남색(藍色)이다. 쪽빛이다. 떠안아 간직하고 싶어지는 물빛이다.
쪽빛 바닷물이 넘실거리는 포구였나 보다. 얼마나 푸르렀으면 남포(藍浦)였을까? 아니면 이 지방에도 염색 원료로 사용했던 '쪽'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을까. 눈처럼 새하얀 베에 쪽빛을 염색하는 행위도, 하늘 닮은 빛깔을 품어보려는 순진무구다. 결코 가벼운 색이 아니다.
은은한 쪽빛 옷감은, 시원한 청량감으로 바라만 보아도 마음이 차분해진다. 옛 남포현에서 쪽 염색이 얼마나 활발했는지는 불확실하다. 다만 꾸준히 이어져 온 전통임은 분명하다. 쪽을 우려내고 발효시켜 염료로 만드는 과정도 긴 기다림이다.
무창포 옆 용두해수욕장과 대천해수욕장 사이 바다가 남포방조제에 막혀 버렸다. 막힌 바다는 수십 만㎡의 농지가 되었다. 반대로 그 넓이만큼 갯벌도 사라졌다. 막히기 전 읍성에서 바다까지 5리 남짓이었으니, 쪽빛 바다가 무시로 넘실거렸을 터이다.
성안이 평화롭다. 따스한 봄볕이 쏟아지고, 사방은 고즈넉하다. 쪽빛 하늘에 퍼덕이는 새의 날갯짓만이, 쪽물을 빚는 장인의 바지런한 손길 같다. 곳곳이 허물어졌어도 제 모습을 지켜내려 몸부림치는 성곽이 애잔하다. 마치 대처로 돈 벌러 간 자식을 애타게 기다리는 촌로의 뒷모습 같다. 하염없이 동구 밖을 쳐다보지만, 자식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번성했던 한 시대를 고이 기억할 뿐, 내세워 자랑하지 않는다. 읍성의 옛 영화도 긴 기다림의 쪽빛이었을까. 나긋이 지줄대는 이끼 낀 성곽이 푸르던 옛 영화를 전설처럼 들려준다. 꺾이지 않는 의기와 추상같은 기상으로 찬란하게 빛나던 시절이 있었노라고.
남포읍성
읍성 동쪽으로 차령산맥 굵은 줄기가 뻗어 뒤를 든든히 받쳐준다. 따라서 성은 자연스럽게 바다가 있는 서쪽을 향해 앉았다. 이런 연유로 서문이 정문이었으리란 걸 도로망과 토지이용으로 가늠해 본다.
서쪽으로 앉은 동헌과 외삼문인 진서루의 향을 통해서도 이런 경향성은 확실해 보인다. 물론 남문 밖에도 전통 마을의 전형이랄 수 있는 촌락이 형성되어 있다.
크고 작은 돌로 쌓아서인지 성벽이 친근하다. 세종 때의 여느 성곽처럼 아래엔 큰 돌로 기초를 다지고 위로 갈수록 점점 작아지는 돌을 맞물려 쌓았다. 옹성 절반이 도로에 싹둑 잘려 나간 서문에 이르니, 낡은 도포 자락처럼 곳곳에 허물어진 흔적이 역력하다. 서문에서 남포초등학교까지 길이 곧다. 이 길은 학교가 들어서기 전 곧장 동문까지 닿았으리라.
헐리고 허름한 성벽에 성이 견뎌온 인고의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특이함을 찾을 수 없는 성안 토지이용이다. 농사를 짓는 게 분명한 민가 2채와 서문 안 길 위아래로 펼쳐진 논밭이 성안의 절반을 차지한다. 성의 동쪽에 치우쳐 초등학교가 앉았다. 전교생이 30여 명 남짓이란다. 남문 못 미쳐 동문으로 가는 길이 좁아 구불거린다. 남문 역시 옹성을 잃고 남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