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차분해진 요즘, 읽은 책을 다시 읽기 중이다. 기러기 아빠로 지내던 중년 지인이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며칠 전 들었다. 한동안 젊은 아빠인 그분의 인생이 안 됐다는 생각을 하던 중 문득 2년 전쯤 읽었던 존 윌리엄스의 책 <스토너>가 불현듯 떠올랐다. 옛 책을 다시 집어든 이유다.
<스토너>를 통해 한 남자의 인생, 아니 우리 모두의 인생을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1910년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스토너는 아들이 더 나은 삶을 살 길 원했던 아버지 권유로 농업과에 입학한다. 하지만 인생은 알 수 없었다. 문학과 운명적 만남을 하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결국 대학교수가 되지만 그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그의 삶은 특히 사랑에서도 힘들었다. 아내와의 관계는 삭막 그 자체였고 불행의 연속이었다. 결혼 생활은 결국 증오로 끝났고 딸과의 관계도 소원해졌다. 두 번째 사랑을 만나게 되었지만 이루어질 수 없었다. 결국엔 이 사랑마저도 파멸을 맞는다. 중년을 맞는 스토너는 학문과 책에 헌신을 다했지만 교수로서도 그다지 성공하지는 못했다.
2년 전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읽는 내내 화가 났고, 주인공이 안타깝고 답답해 이해할 수없이 슬펐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다시 읽기로 만난 스토너에게서는 '연민의 슬픔'을 느꼈다. 한 번뿐인 삶을 사는 인간이 어쩌면 이렇게 힘들게 살아내야 하나.
감정이입이 쉽게 된다는 것은 아마도 '스토너'의 인생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인생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스토너는 바로 '우리 모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자인 나도 책을 읽는 동안 내 삶을 투영하길 반복하고 있었다.
스토너의 인생을 다시 읽고 나니 한 사람의 묵직한 인생을 산 기분이었다. 새롭게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무관심'이 눈에 띄었다. 무관심은 사랑의 상처를 이겨내기 위해 스토너가 택한 수단이다. 무관심으로 감정을 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관심의 다른 말은 '열정이 사라짐, 외면, 거리 두기, 객관화'와 같은 방법으로 동일시 된다.
사랑하는 아내와의 결혼 생활이 실패한 것을 알고는 스토너는 아내에게 무관심해진다. 더 이상 상처를 주는 아내에게 '화'로 대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열정 넘쳤던 영문과 교수직도 무관심해진다. 열정이라는 피 끓는 감정이 무관심으로 바뀌는 과정이 소설에서는 반복된다. 그렇게 인간 스토너의 삶이 끝으로 치닫는다.
처음 스토너를 읽었을 땐 실패한 인생이라 생각했다. 학자로서 명성을 떨치지도 못했고 교육자로서 학생들의 인정을 받지도 못했으며, 사랑에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