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이름은 나라의 흥망에 따라 높아지거나 낮아지기도 하고, 때로는 사라지기도 한다. 곡성이라는 이름도 시대에 따라 여러 번 바뀌었지만, 그 발음만은 여전히 남아 있다.
골짜기 성이라는 곡성(谷城)은 통일신라 경덕왕 16년(757년)부터 사용되었다.
곡성은 백제 시대에 욕내(欲乃)와 욕천(浴川)으로 불렸다. 이 이름들은 섬진강과 깊은 연관이 있어 보인다. '내'는 우리말이고, '천'은 한문 표현이기 때문이다. 곡성(谷城)은 강에서 골짜기로 이름이 바뀐 것이다.
사실 곡성은 노령산맥과 지리산이 맞닿아 골짜기가 많고, 곡성군이나 석곡면처럼 '골짜기'와 관련된 이름도 많다. 고려 시대에는 길이 험해서 상인들이 통곡하며 지나갔다고 해서 '울음소리'라는 곡성(哭聲)으로 불렸다고 한다. 지금도 어려울 때 '곡소리' 난다는 말을 쓰지 않는가.
영화 <곡성>(哭聲)은 감독 나홍진이 어린 시절 외갓집에서 지냈던 곡성에서 촬영된 작품이다. 감독이 지역 역사를 알고 영화 제목을 붙였을 가능성이 크다. 이 영화는 곡성을 널리 알리는 데 이바지했지만, 한편으로는 괴기스러운 제목과 줄거리 때문에 곡성에 좋지 않은 이미지를 남겼을 수도 있다.
조선 시대에는 곡성(哭聲)의 뜻이 부정적이라는 이유로, '곡식 곡(穀)' 자를 써서 곡성(穀城)으로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당시 중앙 정부는 이곳을 곡식이 풍부한 곳으로 여겨 세금을 많이 부과하였다. 도로(다시) 골짜기 성인 곡성(谷城)으로 돌아와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