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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 아이와 간 집회, 하루 만에 극단을 경험했습니다
2025-01-31 15:04:42
최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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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돌아온 토요일. 다섯 살 아이에게 어김없이 산책 일정을 통보하고 시간에 맞춰 길을 나섰다. 동네를 한 바퀴 돌 셈이었다. 언덕길을 따라 내려가 사직단과 종로도서관을 거쳐 인왕산 둘레길을 통해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게 보통의 우리 루트였다. 날이 유독 따뜻했고, 발걸음이 가벼웠다.

보도블럭 위에서 인간말이 되어 게임을 하다 보니 금방 서울 종로도서관 앞에 다다랐다. 광화문 거리에서 웅성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루트를 수정하여 종로도서관 앞에서 사직단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와 광화문 큰 거리가 내다보이는 곳에 도착한 순간 저 멀리 깃발들과 사람들이 보였다.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12월 3일 이후 나의 일상은 쏟아지는 충격적인 뉴스들에 잠식되었다. 하루 종일 뉴스를 들으며 흥분하는 나를 지켜보던 아이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이 나쁜 짓을 해서 경찰이 체포해야 되는데, 대통령이 집에 숨어서 나오지를 않아."

자신이 좋아하는 '경찰', '체포'라는 단어가 등장해서인지 아이는 흥미를 보였다. 그 이후 아이는 종종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대통령은 체포됐어?'라고 묻곤 했다.


언젠가 집회가 뭐냐고 묻는 다섯 살 아이에게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원하는 것을 크게 말하는 거라고 설명해 주었다.

"예를 들면, 일주일에 4번만 유치원에 가자! 이렇게 외치는 거야."

아이는 매우 흡족한 얼굴로 그럼 나는 그거 할래! 일주일에 4번만 유치원에 가기!라고 외쳤다. 내친김에 집회에 한번 나가보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집회에 참석하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가장 큰 이유는 나 혼자서 아이와 괜찮을까,라는 걱정 때문이었다.

국회 앞 대로를 가득 매운 사람들과 삭막한 여의도를 단번에 축제의 현장으로 변신시킨 응원봉들, 추운 날씨에 집회에 나온 아이와 양육자들을 위해 사비를 털어 버스를 대절한 시민, 집회 근처의 식당과 카페에서 이어지는 선결제 소식을 듣고 보면서 오바마 대통령의 유명한 말이 생각이 났다. WHEN THEY GO LOW, WE GO HIGH.

온 우주의 기운이 떠미는 것 같았다

이상하게 그날은 마치 온 우주의 기운이 우리를 그곳으로 떠밀어주는 것 같았다. 드디어 우리도 집회에 가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차량이 통제되어 한산한 넓은 도로를 옆에 끼고 천천히 인파들이 보이는 곳으로 향했다.

경복궁역 인근, 은행이 있는 건물 앞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다시 만난 세계가 흘러나왔다. 이 노래가 21세기의 투쟁가가 되기 전부터 나는 이 노래를 좋아했다. 순정만화 주제곡과 응원곡을 적절히 섞어 놓은 것 같은 멜로디에 뻔하지 않은 가사가 좋았다. 특히 "널 생각만 해도 난 강해져, 울지 않게 나를 도와줘" 이 부분에서는 매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경복궁 담장을 따라 휘어지는 골목 안쪽으로는 참석자들에게 커피와 차, 어묵을 무료로 나눠주는 푸드트럭들이 늘어서 있었다. 정치인과 학교 동문회, 노동조합, 그리고 어떤 명패도 내걸지 않아 아마도 시민들이 자비로 운영하는 것으로 추측되는 트럭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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