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그런 상상을 했다. 연극이 끝나고 관객이 다 나간 뒤 나만 안 나가고 객석에 앉아 있다. 누군가 다가와서 '손숙 선생님, 연극 다 끝났어요'라고 하면 나는 이미 떠나 있었다. 그 순간이 내 생의 마지막인 거다. 무대에서 못 죽으면 객석에서 죽었으면 좋겠다. 복이다. 그렇게 가는 것이야말로."
배우계 두 거장의 '웰다잉'에 대한 성찰이 시청자들에게 묵직한 울림을 전했다. 지난 29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는 원로배우 박근형과 손숙 선생이 출연해 자신들의 연기 인생을 전했다.
연극계의 고전인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호흡을 맞추고 있는 박근형과 손숙은 연기 경력만 둘이 합쳐 124년에 이르는 대한민국 배우계의 살아있는 전설들이다. 오랜 연기 경력에도 두 배우가 연극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노장배우 박근형이 매순간 치열할 수밖에 없는 이유
박근형과 손숙이 공연 중인 <세일즈맨의 죽음>은 산업화 시대의 평범한 세일즈맨이 산업화 시대에 가정을 이끌어가다가 가족을 위해 죽음을 선택하게 되는 비극적인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한 회당 공연 시간만 무려 170분에 이르며 어마어마한 대사량으로도 유명하다.
손숙은 "박근형 선생과 이번에 처음 연기했는데, 성질이 조금 X랄 같더라"며 갑작스러운 돌직구를 날려 모두를 포복절도하게 했다. 알고 보니 "작품을 너무 열심히 하더라. 우리가 젊을 때 연극하던 그 정신을 아직도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칭찬의 의미였다. 손숙은 "무대에서 박 선생님 눈빛만 봐도 설레고 짠하다. 그런 배우 만나기기가 쉽지 않다"며 재차 극찬했다.
박근형은 "세월이 얼마 안 남았다. 그래서 저는 마음이 너무 급하다. 보여주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너무 많은데"라며 매순간 더 치열하게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손숙은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는걸 못 느끼겠더라. 어느새 연기 인생 60년, 나이 팔십 이러니까, '뭐야 이거?' 라는 생각도 든다"라며 미소를 지었다.
한편으로는 "나이 들어서 좋은 점도 있다. 일단 편안해지고, 끓던 감정이 좀 가라앉는다. 욕심도 내려놓게 된다"고 했다. 그는 "연극에서는 주인공만 맡았는데 어느 날부터 할머니 역할이 들어오더라. 그러다 보니 '아, 내려놓자' 싶었다"면서 "마냥 주인공만 고집하면 추하겠다 싶었다. 이 나이에 멜로 드라마 주인공을 주겠나. 이제는 어떤 역할이든 별로 안 따지고, 한두 신이라도 한다는 게 재밌다"고 고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