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힌탈레에서 아누라다푸라로 가는데 서쪽 하늘로 해가 떨어진다. 붉은 해와 함께 어둠이 내린다. 1400년을 이어온 스리랑카 고대 아누라다푸라 왕조는, 1200년 이상 불교의 황금시대를 열었다. 그 때문에 아누라다푸라에는 유서 깊은 사원과 불교 문화유산이 도시 곳곳에 널려 있다.
불교사적인 면에서나 고고학적인 면에서 가장 중요한 두 사원이 아바야기리 사원과 제타바나(Jetavana) 사원이다. 아바야기리는 기원전 3세기 세워진 가장 큰 절이어서 마하 사원이라고 불렸다. 이것이 기원전 1세기 전반 아바야(Vattagamani Abhaya) 왕에 의해 확장되면서 그 이름이 아바야기리로 바뀐 것 같다.
법현 스님의 <불국기>에 따르면, 부처님 오신 날이 있는 삼월 중순에 치아 사리가 이곳 아바야기리 사원에 90일 동안 모셔졌다. 그러면 왕과 백성들이 이곳에 모여 향을 피우고 연등을 밝히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법회를 계속한다. 만 90일이 지나면 불치사리는 다시 성내의 정사로 돌아간다. 성안 불치정사에서는 재(齋)를 올리는 날이 되면 문을 열어 여법하게 공경의 예를 진행했다고 한다.
"부처님 치아사리는 항상 3월 중에 나온다. 10일 전부터 큰 코끼리를 장엄하게 치장하고, 말 잘하는 사람에게 국왕 의관을 하게 한 다음, 북을 치면서 부처님 말씀을 낭송하게 한다. […] 왕은 도로 양편에 오백 가지 보살상을 만들고, 전생의 부처상을 만들고, 코끼리, 사슴 말의 형상을 만들어 치장한다. 이와 같은 형상은 그림처럼 화려하게 채색하고 장식해 마치 살아있는 것 같았다. 그런 후에 불치사리를 모셔내어 큰길을 따라 이동하며 공양을 받는다. 그리고 무외정사(無畏精舍) 불당에 도착한다."
제타바나 사원은 기원전 3세기 마힌다가 7일 동안 불법을 전하며 설법한 숲에 세워졌다고 한다. 제타바나는 성스러운 장소(jotivana) 또는 빛나는 장소(jotaka)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규모는 아바야기리보다 적어 3,000명 정도 승려가 거주했다고 한다.
사원의 한 가운데 기단부를 포함해 높이가 150m나 되는 거대한 탑이 있다. 그렇다면 이집트 피라미드에 견줄만한 대단한 기념물이 된다. 제타바나 탑 서쪽 호숫가에 투파라마(Thupara) 탑이 있다. 이것은 인도의 아쇼카왕이 보내준 부처님 쇄골 사리를 모신 스리랑카에서 가장 오래된 탑이다.
그러나 해가 넘어가 안타깝게도 이들 사원과 탑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 대신 상대적으로 조명이 더 잘되어 있고 사람들이 더 많이 찾는 세 군데 사원을 방문하기로 한다.
이수르무니야(Isurumuniya) 사원, 스리 마하보디 사원, 루완웰리세야(Ruwanweliseya) 사원이다. 이수르무니아 사원은 팃사(Tissa) 호수 동쪽 왕궁 쾌락의 정원에 위치한다. 커다란 바위에 절을 지은 일종의 석굴사원으로, 바위 위까지 올라갈 수 있다. 절 앞에 작은 연못이 있어 발길이 자연스럽게 그곳을 향한다.
그런데 연못에 드리운 암벽에 코끼리 조각상이 새겨져 있다. 코끼리가 목욕하는 모습으로 7세기에 조각되었다고 한다. 스리랑카 사원의 입구 바닥에는 불교를 상징하는 조각이 새겨진 반원형의 돌판이 있다.
조각에서 사자, 코끼리, 말, 황소, 공작 같은 동물을 볼 수 있다. 연화문과 당초문 장식도 있다. 영어로 문스톤(moonstone)이라고 하고 싱할라어로 산다카다 파하나(Sandakada pahana)라고 한다. 문스톤의 앞쪽으로 계단이 이어지고 계단 기둥 좌우에는 수호신 격인 금강역사가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