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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교에서 주먹 자랑 말라는 이유, 이 사람 때문이었구나
2025-04-03 16:36:03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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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센인들이 걸었던 '눈물의 길'을 따라 두 번째 걷기에 나선 지난주 금요일(3.28) 출발 지점은 전남 벌교다. 일제강점기 시절인 1916년 소록도 나환자수용소가 설립되면서 소록도를 찾는 환자들 대부분이 벌교역에서 내려 고흥 소록도까지 걸었기 때문이다.

소록도에 계시는 환자나 치유된 분 대부분이 80세가 넘은 지금, 벌교에서 그분들의 흔적을 찾기는 어려웠다. 오히려 벌교역 인근 공원에 세워진 동상과 '태백산맥 문학거리'가 내 눈길을 끌었다.


'벌교'를 대표하는 두 가지는 '꼬막'과 '주먹' 이야기다. 꼬막은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이니 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벌교에서 주먹 자랑하지 마라'는 이야기에 대한 출처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다음은 공원 게시판에 기록돼 있던 내용이다.

"마침 장터에서 나뭇짐을 지고 내려오다가 보니께, 일본 헌병들이 조선사람 장사꾼들을 발로 걷어차고, 짐짝들을 막 집어던져 불면서 횡포를 부리고 있었던 모양이여…

이걸 보고 못참은 안 대장이 지겟짐을 떡 받쳐놓고 쫒아 와서 그대로 주먹으로 대그빡 할 것 없이 몇 대 쳐분께, 그냥 쫙 뻗어불드라여…"

게시판에 등장하는 안대장이란 보성출신 의병장 안규홍(1879~1910)을 일컫는다. 안규홍은 보성의 양반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가계가 궁핍하여 어린 나이에 머슴이 되었다.

소년티가 채 가시기도 전에 '담살이', 즉 꼬마 머슴 생활을 시작한 그는 1907년 담살이 동지들을 규합해 강성인이 이끄는 의병단과 합세해 보성 동소산에서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때문에 그가 이끄는 의병단을 '담살이 의병'이라고 불렀다.

1908년 4월에 의병장으로 추대되어 1909년 9월까지 파청, 진산, 원봉 전투 등에서 대원 450명을 이끌고 일본군과 싸워 큰 승리를 거뒀다. 1909년 9월 25일에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이듬해에 교수형으로 순국하였고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 되었다.

안규홍 의병장 동상을 쳐다보다가 요즈음 세태가 생각나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가난해 남의 집 머슴살이 하느라 글도 제대로 못 읽었다는 '담살이 의병장'은 국가와 어려운 사람들을 생각해 목숨 걸고 일본군과 싸웠다.

그런데 요즈음 많이 배웠다는 최고 명문대 출신의 법꾸라지들은 호의호식하며 대한민국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 안규홍 의병장이 살아계셨다면 주먹 한방 날리지 않을까?


안규홍 동상 인근에는 을사오적의 매국 대신을 저격한 죄로 귀양살이를 당한 후 제석산에서 수도에 전념한 '나철(1863~1916)'의 부조가 세워져 있었다. "나를 대한제국의 대표로 회담에 참석케 해 주시오"라고 탄원한 그는 1909년 대종교를 세우고 무장항쟁 지도자 배출과 교육운동에 헌신한 애국지사다.

대종교가 독립운동에 끼친 영향은 나철의 독립 외교활동과 오적 처단, 대종교 창건, 대한독립선언과 청산리대첩 등이다. 나철의 부조 옆에는 <고향><동백꽃><그리워>등을 작곡한 채동선의 부조가 세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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