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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경찰에게 독립선언서 나눠줬더니... 돌아온 반응
2025-04-05 19:52:23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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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영화 같은 독립군 전투가 있었다. 어쩌다 보니 영화처럼 된 게 아니라, 처음부터 영화 시나리오 같은 각본 하에서 전개된 전투다. 국가보훈부의 <독립운동사> 제7권이 '차련관 의거'로 지칭한 1925년 7월 5월의 항일전투는 한 편의 영화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의거'라는 용어는 1983년에 <독립운동사>를 펴낸 원호처(국가보훈부)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가 사용한 표현이다. 그런데 이 전투는 정의부에서 기획하고 실행했다. 정의부는 1919년 4월 11일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기능이 약해지던 1924년에 만주에서 수립돼 독립운동단체의 연합기구 혹은 준정부 역할을 했다. 주로 개인이나 민중의 거사를 표현하는 데에 사용되는 의거라는 용어는 이 전투와 어울리지 않는다.

전투는 평안북도 해안 지역인 철산군 차련관(車輩舘)에서 일어났다. <독립운동사>는 이곳을 차련관으로 표기하지만, 이 지명은 여러 발음으로 불린다. 일례로, 국사편찬위원회가 운영하는 <조선왕조실록> 사이트는 차련관을 차연관으로도 표기하고 거련관 혹은 거연관으로도 표기한다. 여기서 일어난 독립군 전투가 널리 알려져 이곳 지명이 많이 회자됐다면 이 지명 표기에 관한 국가보훈부와 국사편찬위원회의 합의가 이뤄졌을 수도 있다.

일본인 경찰이 있는 주재소를 습격한 독립운동가들


1925년 7월 3일, 평북 철산군 차련관 뒷산에 7인의 무장 독립군이 나타났다. <독립운동사>는 "정의부 군사부 별동대원 이진무·홍학순·김광진·김인옥·이창만·오동락" 여섯 명만 언급한다. 원호처의 후신인 국가보훈처가 1987년에 발간한 <독립유공자공훈록> 제4권 김광진 편은 김광진이 "이진무·홍학순·김인옥·김학규·이창만·오동락 등 6명"과 함께 참여했다고 말한다. 공훈록은 김학규(金學圭)를 추가로 언급한다.

이 김학규는 임시정부 한국광복군 참모를 지낸 독립운동가 김학규(金學奎, 1900~1967)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광복군 참모 김학규에 관한 기록에서는 이 전투가 나타나지 않는다. <독립유공자공훈록> 제5권 김학규 편에 따르면, 그는 1927년까지 만주의 문회고급중학교에서 공부했다.

차련관 뒷산에 출현한 김광진·김인옥·김학규·오동락·이진무·이창만·홍학순은 산중에서 우연히 만난 천도교 신자의 도움으로 한복과 짚신을 구했다. 군복을 벗고 한복과 짚신 차림을 한 7인은 이튿날인 4일 차련관 장터로 내려갔다. 그런 뒤 중국 음식점부터 찾아갔다. 여기서 식사를 하면서 경찰 주재소 습격 계획을 짠 뒤 다음 날에 행동을 개시했다.

7월 5일, 별동대 4인은 주재소 내부로 들어가고 3인은 밖에 남아 주변을 경계했다. 이때 주재소 안에서는 경찰 넷이 벽에 총을 걸어둔 채 회의를 하고 있었다. 국사편찬위원회가 펴낸 <한민족독립운동사> 제8권은 그 넷이 한국인이 아니라 전원 일본인이었다고 알려준다.

그런데 주재소에 들어간 독립군들은 뜻밖의 장면을 연출했다. "4명의 별동대원들은 일경이 있는 앞으로 가 미리 준비해 간 독립선언서를 한 장씩 골고루 나누어주었다"고 <독립운동사>는 서술한다. 이 책은 "한글을 모르는 일경은 이것이 무엇이냐고 저희들끼리 떠들어댔다"라고 한 뒤 다음 상황을 묘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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